춤추는 남녀무늬 항아리*
김일하 시인
나는 이제 흙이 되기로 하네
흙이 되어 목이 긴
저 민무늬 대문을 열고 들어가
별빛보다 먼 여행을 할 것이네
그리하여 전생 이전의 전생
내가 살던 마을에 당도하면
한 줌 고운 흙으로 당신을 빚을 거네
몇 밤이고 사랑하며
눈이 맑은 아이도 낳을 거네
흙의 후예들이 대추알처럼 자라나고
마침내는 거룩한 계보의 일가를 이룰 거네
당신과 나 흙으로 빚은 꽃잎을 지져먹고
마주하여 끝나지 않을 춤을 추며
별빛보다 먼 여기까지 되짚어 올 것이네
그리하여 어디 옛터에서 출토되면
목이 긴 시대의 태평한 역사가 되어
민무늬 속 지워지지 않는 이름으로 남을 거네
박물관 유리벽 너머 토우를 닮은 남자
숨소리까지 음각하여
다시 별빛보다 먼 여행을 할 것이네
나는 다시 흙이 되기로 하네
* 경주국립박물관에 전시된 7세기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
민무늬에 남자와 여자의 모습이 1차원적으로 음각되어 있다.
詩作노트
오래 전 경주박물관을 관람하던 중 시선을 붙잡는 토기 한 점을 봤다. 머리는 동그라미, 몸과 팔, 다리는 작대기처럼 찍찍 긋고 치마는 삼각형으로 표시한 남자와 여자가 [춤추는 남녀무늬 항아리]라는 제목(이름)으로 음각되어 있었다. 날카로운 것으로 아무렇게나 새긴 듯한 모습으로……, 그림을 보는 순간 충격과 환희에 휩싸인 나는 저 속으로 들어가면 천 오백년 전의 사랑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아 한참을 그 자리에 붙잡혀 있었다.
경주여행 내내 춤추는 연인을 생각하다가 집에 돌아오자마자 글을 쓸 준비를 했다. 낡은 초가가 보이고 사립문이 보이고 남자와 여자의 행복에 찬 미소가 보이는데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경주박물관에 전화해 보고 대학교 사학과에도 전화해 보았지만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없었다. 며칠에서 몇 달, 해를 넘기며 한 줄도 춤추는 연인을 엿보지 못하는 시간이 흘렀다. 결국 ‘이건 시가 될 수 없나?’ 포기에 가까운 방치에 이르렀다.
7~8년 동안 지지부진하던 어느 날,‘흙이 되어 저 연인을 살고 싶다.’생각하며 항아리 속 세상으로 걸어 들어갔다. 흙으로 사랑을 빗고 눈이 맑은 아이를 낳고 함께 춤추며 일가를 이루어 살다보니 어느새 나는 박물관 토기 앞에 다시 서 있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벼락같이 詩가 왔다. 오래 속앓이를 한 글이지만 ‘항아리 속 연인처럼 천 년을 기다리면 어떠랴. 내게 와서 다시 천 년을 살아준다면……’생각했다.
이제 저 연인 중 하나는 나이고 하나는 나의 사랑이다. 민무늬 대문을 밀고 들어가 나는 다시 천 년을 살 것이다.

김일하 시인
한국작가회의 회원
고산문학대상 신인상
공무원문예대전 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