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광역시 도시철도건설본부장’을 역임했던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용모 교수는 대구사람들에게 모노레일의 아버지 하늘열차의 아빠라고 불린다. 현재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로 영남기술교육원교수 로도 활동중이며 한국건설기술인협회 정책제도개선위원장과 (주)해동기술개발공사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또한, 철도기술사. 해외자유여행가로 열정적인 나날을 보내고 있다.

누구보다도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안용모 교수는 영주 강변아파트에 홀로 살고 있는 아흔이 넘은 어머니( 박영옥 93세 )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삶의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코로나 기간 중에는 어머니가 사는 아파트에 서재를 꾸며놓고 그곳에서 일하며 같이 생활하기도 했다.

코로나가 잠잠해진 뒤에도 안용모 교수는 노모의 마지막 소풍을 아름답게 지켜드리고 싶어서 시간만 나면 달려가곤 했다. 그러나 어머니를 찾아뵙는 것이 효도하러 가는 게 아니라, 불효자식으로서 부족한 자신을 단련하는 시간인 것 같았다고 말했다. “험한 세월 힘겹지만 바르게 땀 흘리며 건너오신 우리 어머니, 대구로 가서 같이 살자고, 제가 여기서 어머니 모시고 있겠다고 해도 강하게 거절하시곤 하셨어요. 그 모두가 자식을 위한 당신의 사랑임을 압니다.”

내 어머니의 가을미소
내 어머니의 세월이 저물어간다. 평생 건강하실 줄 알았던 어머니가 3년 전부터 요양보호사님의 돌봄을 받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턱없이 노쇠해지시고, 곱디 고운 얼굴빛은 어두워져만 가고, 하얀 머리칼도 당신이 택해서 짧게 깎으시었다. 가누기도 힘든 몸을 유모차에 기대어 자식 마중 나오시며, 오히려 다 큰 자식을 걱정하신다. “손이 차다. 얼굴이 축났다. 배고프다. 어서 밥 먹어라.”라고 말씀하시며 손짓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 가슴 가득 안타까움이 고여 온다. 그럴 때면 나는, 창 너머 서천을 물기 젖은 눈으로 바라보며 허허로움을 안으로 삭이는 게 고작이다.
47년 전, 빛바랜 잡지 한권 속 어머니의 글
하루는 어머니의 장롱을 정리하다가 빛바랜 여성중앙 잡지 한권을 발견했다. 띠지가 붙은 페이지를 들추자 ‘아들의 입대소식을 듣고’ 라는 글이 어머니의 단아한 사진과 함께 게재되어 있었다. 47년 전, 아들의 입대소식을 전달받고 가슴아파하시던 어머니의 마음이 가득 담아있는 글이다.


그 당시 민주화의 물결에도 흔들렸고 모든 게 부족하기만 했던 나는, 조그만 보답의 결실이라도 부모님께 보여드리지 못한 채 입영통지서를 받았다. 아무것도 한 것 없는 부끄러움을 걸머진 채, 입대를 해야 함을 어머니께 전했었다. 풍부한 선택의 한가운데서 건방진 망나니처럼 거침없이 뛰어가던 아들이 얼마나 걱정되고 가슴 아팠을까? 어머니의 글을 다시 읽어 보아도 아직 나는 백만분의 일도 부족한 아들임에 틀림이 없다. 꿈같은 시간이 많이도 흘렀지만, 엊그제 일 같은 아름다운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사진 속 고운 어머니께서 칠순의 나를, 추억속의 젊은 아들로 한동안 불러 세웠다. 부족한 아들이지만, 내 어머니의 가을이 짧지 않도록 따뜻하게 지켜드리고 싶다.
-47년 전, 어머니의 편지글 내용중에서-
'초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코흘리게 인줄만 알았던 꼬마가 중학생이 되어 객지 생활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고 그때부터 9년째 손수 밥을 지어먹으며 배웠으니 혼자 크지 않았나 하는 엄마 된 죄책감이 앞섬을 자인한다. 이제 그 생활도 폭양이 쏟아지는 8월이면 입대를 한다니 거짓말만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