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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의 다른 모습을 찾다, 김순희

만들어 가는 ‘자리’ 그리고 함께 어울림

기사입력 2024-06-11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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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신의 고향을 그리워하며 돌아오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귀향이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쉽게 농촌과 관련된 미래를 떠올리며, 잠시 멈칫하곤 한다. 평생 일궈둔 직업과 성과들을 뒤로 한 채 발걸음을 돌리기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 귀향의 다른 모습을 찾고 일궈가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 지역의 얼굴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평생 했던 직업과 연계해 지역 사회에 이바지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순흥면의 김순희 씨를 찾아가 봤다.

 

용기 있는 선택, 쉽지 않은 귀양살이

부부 교사였던 김순희 씨는 퇴직 후 연세가 많아 건강이 좋지 않은 시어머니를 돌봐드리기 위해 남편의 고향인 영주로 3년 전에 귀향했다. ‘가족의 문화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김순희 씨는 시어머니와 함께 하는 지금이 어렵지 않다고 전했다. 귀향의 어려움은 다른 곳에 있었다. “저는 성남 분당에서 왔는데, 처음에는 제주도에 있었어요. 영주에 용기 있게 온 게 제주도에서 걸으니까 좋잖아요. 그래서 뭐 어디든 걸어 다니고 탐방하면 되지.’ 이러고 쉽게 생각하고 왔죠. 근데 왔는데 5~6시만 돼도 새카맣더라고요. 나갈 수가 없었죠. 또 남편하고 동네를 돌기 시작했는데 동네 개들이 다 짓는 거예요. 그래서 얼마 걷지 못하고 집에 들어왔어요. 정말 갇힌 기분이더라고요.”라며 일화를 전했다.

 

귀향의 길은 아직 쉽지 않았다. “11월에 이사를 왔어요. 바람이 얼마나 부는지 예쁜 소품을 갖다 놓아도 아침에 일어나서 보면 다 날아가서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도 없었죠. 제가 이런 일반 주택에 살아본 적이 없어서 집에 적응하기도 쉽지 않았어요. 너무 춥고 뜨거운 물도 잘 나왔다 안 나왔다 하고 너무 힘들었죠.”라고 전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외로움이었다. “갈 데가 없는 거죠. 어디 갈 데도 없고 만나서 차 한잔 마시고 할 수가 없었어요. 정말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죠. 전에는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하는 것에 아무 거리낌 없었는데 지금은 어떤 모임이라도 갈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교류가 다 끊긴 느낌이었죠.”라고 전했다.

 

양쪽 다리의 하지정맥류 수술을 한 김순희 씨는 농사에 큰 관심이 없어 더욱 쉽지 않은 귀향의 길이었다. “저는 농사짓는 거에 관심이 없나 봐요. 쭈그리고 앉아서 하면 다리가 좀 아프거든요. 하지정맥류도 양쪽 다 수술했고요. 한번은 남편하고 지인 부부하고 어딜 가는데 밭에 너무 예쁜 흰 꽃이 피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물어봤더니 감자꽃이래요. ‘감자도 저렇게 예쁘게 꽃이 피는구나.’ 그랬더니 앞에 있던 우리 남편이 날 휙 쳐다보고는 가더라고요. 알고 보니까 우리 집에도 감자꽃이 피었는데 자기 집에 있는 감자꽃은 모르고 다른 밭에 와서 그러고 있으니까 쳐다봤더라고요.”라고 웃으며 일화를 전했다.

 

천천히 열리는 마음의 문, 귀향

평생 어려울 것 같던 귀향은 김순희 씨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게 만들었다. 동네 사람들과 교류가 많은 남편은 김순희 씨에게 큰 힘이 되었다. “남편이 동네 사람들하고 잘 지내니까, 건넛집 분들하고도 교류가 생기고 동네에서도 나물이나 사과를 가져다주시면서 내가 이 동네에 같이 사는 사람의 일원이 됐다는 걸 느끼게 된 것 같아요. 동네 사람으로서 스며들고 있는 거죠.”

 

영주에도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다. “우연히 약선당에 가족끼리 밥을 먹으러 갔는데 그 이후로 약선당을 좋아하게 됐어요. 한 번은 여기서 먹은 인삼 튀김을 집에서 해봤다.’라고 얘기를 하는데 요리하는 거에 관심이 있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래서 관심이 많고 먹어본 거는 내가 해보려고 노력한다.’라고 했더니 음식 연구에 오면 어떻겠냐고 권유를 해서 음식 연구에 들어가게 되었죠.” 그렇게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된 김순희 씨는 천천히 인연들을 넓히며 적응해 갈 수 있었다.

 

음식 연구회에서 알게 된 새로운 인연은 후원의 길로 이어졌다. 후원을 통해 아이들과 소통을 하는 일은 평생 교육직에 몸담았던 김순희 씨에게 여기에 꼭 필요한 존재라는 걸 느끼게 해 주었다. “저는 아직도 아이들하고 대화하고 수업하는 게 좋아요.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까 아이들 엄마가 집안 분위기가 달라졌다. 아이들이 밝아졌고 아이 둘이 깔깔거리고 웃는다. 너무 고맙다.’라고 했다고 하더라고요. 아이를 변화시키는 건 정말 필요한 일인 것 같아요. 저도 그런 도움을 받았던 사람이라 선생님이 아이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해요. ‘단 한 명이라도 나로 인해서 아이의 인생이 바뀌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지금은 자치센터에서 요가도 하고 라인댄스도 하며 점점 동네와 지역에서 하는 일도 늘어나고 있다. “이제야 우리 집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혼자 자고 이러면 무섭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그런 생각이 안 들고 이제 여기가 우리 집이지.’라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그래도 좀 적응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만들어 가는 자리그리고 함께 어울림

교사 시절 위탁 학교에서 봉사하며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던 김순희 씨는 여자앤데 저랑 같이 수학을 공부했는데, 다른 과목 선생님들이 자꾸 희끗희끗 보는 거예요. ‘배 아프다’, ‘화장실 간다5분을 못 앉아 있는 아이가 저랑은 한 번도 움직이지 않고 2시간을 같이 앉아서 수업했던 거예요. 또 외국에서 오래 있다가 온 아이였는데 대입을 위해서 검정고시를 치르는 거예요. 미술 계열이라 수학이 필요 없는 아이인데도 열심히 했어요. 하루는 특강 끝나고 전화가 왔어요. ‘수학은 자신의 힘으로 풀 수 있는 게 단 하나도 없었는데 덕분에 만점을 맞았다고요. 정말 좋더라고요. 저는 아이들하고 얘기하면서 지내는 게 좋은 것 같아요.”라며 소통하지 않던 아이들과 이야기와 상담을 하며 함께 보낸 시간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김순희 씨는 퇴직하면서 아이를 가르치거나 다문화 가정의 부모와 아이의 인생에 변화를 주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한국어 교사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1급 상담사 자격증도 보유하고 있다. “저는 아주 자그마한 것이라도 내가 할 수 있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그런 느낌이. 그래서 영주 시내에 공부방이나 아니면 복지센터에서 아이들과 같이 놀면서 책 얘기도 하고, 수학도 하고 그러면 어떨까 싶어요. 아이들과 프로그램을 하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라며 작은 바람을 전했다.

 

수익을 위한 게 아니라 어려운 사람을 찾아 도움을 주고 싶은 김순희 씨는 특히, 아이들에게 많은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고 있었다.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김순희 씨는 할 수 있는 한 매일 아이들과 수업을 하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언제까지 매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긴 해요. 사실은 힘들죠. 하지만 일정이 있으면 시간을 미리 조정하며 최대한 지키려고 해요.” 또한,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퇴직 교사들과 함께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위기의 아이들에게 체계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랬다.

 

마지막으로 김순희 씨는 시골 사람이라고 일만 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자기계발과 봉사를 많이 하세요. 봉사 단체도 많이 있어서 배우는 게 많죠. 여유 있고 시간이 많아서 봉사하는 게 아니라 정말 바쁘고 시간이 없어 어려운데도 봉사하시는 거죠. 저는 돕는다는 말은 쓰고 싶지 않아요. 그냥 다른 사람들을 내가 돕는 위치가 아니라 함께 어울리는 그리고 아이들한테는 아이들의 어떤 스위치를 눌러주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라고 말을 전했다. 이처럼 자신의 귀향길을 평생 일궈온 직업 그리고 성과와 함께 어울려 걸어가며 귀향의 다른 모습을 찾고 일궈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김순희 씨였다.

 

 

 

 

이지환 프리랜서 기자 (iybc365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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