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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7-20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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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국 영웅들의 흔적을 찾아 떠나다...광복회 회원들의 중국 탐방기-①

송재호(광복회 대의원)

기사입력 2025-01-23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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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 (2024.7.19.)

         ▶ 광복회 서울시 지부 주관으로 중국 동북부 지역 역사탐방 여행 
        
▶ 인천공항에서 출발하여 연길공항 도착
       
▶  연길에서 훈춘시로 이동 (1시간 30-2시간 소요)
       
▶  훈춘시에서 저녁 식사 후 호텔 체크인


 광복회 서울시 지부에서 주관해서 광복회 대의원, 지회장 등 여러 광복회의 구성원들이 2024719()부터 725()까지 67일 간 중국의 동북부 지역으로 역사탐방 여행에 나서게 되었다.

 

광복회 김대하 서울시 지부장을 비롯해서 정동웅, 황긍재, 서동흡, 우용준 등 여러 지회장들 그리고 또한 손기태, 양만진 등 여러 대의원들 그리고 다른 여행참가자 분들 해서 모두 28명의 인원들이 점차 모여들었다.

오늘 날씨가 서울, 인천은 물론 중국의 연길, 훈춘 지역도 청명했던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우리 일행의 목적은 중국 동북부 지역의 우리의 독립유적지를 찾아보고 그 의의를 새삼 되짚어보는 것이고 중국의 동북부 지역인 연길, 훈춘 등 연변 조선족 자치구를 찾아보고서 새삼 이른바 조선족들의 생활 모습들을 둘러보고서 민족의 동질성을 확인하고 동포 간의 유대도 더욱 결속시키는 계기를 찾고자 함이다. 또한 역시 광활한 중국 지역을 탐방하는 것과 아울러서 유서 깊고 그 연원이 찬란한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식견을 넓히고자 함이다.

 

우리 일행은 조선족 동포들이 많이 살고 있는 유서 깊은 도시인 연길공항에 도착했다.

연길은 길림성 동부에 위치한 도시로서 조선족 자치구의 중심도시로서 인구는 약 639,000명이고 동쪽으로는 도문 시와 남쪽으로는 용정시에 접하고 있으며 여기에 조선족의 대학인 연변대학교도 있다.

 

일행 모두는 공항 바깥쪽에서 다시 전세버스에 올랐고 두만강 하류 쪽 도시인 훈춘 시로 향했다. 훈춘 시까지는 연길공항에서 버스로 대략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가 소요되고 있다. 일행은 모두 즐거운 기분으로 버스를 타고 가면서 바깥 풍경들을 바라보고 또 담소도 나누었다.

 

일행 중 우리를 항상 동반하게 되는 가이드가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지역에 대해서 유서 깊은 역사적 유래를 설명했고 우리 민족과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했다. 조선조 시대, 간도지역, 만주지역, 중국 그리고 러시아 등에 이야기할 때 차창 밖으로 만주지역의 드넓은 벌판, 산과 강물들의 풍경들이 지나갔다.

도중에 도문복무구(휴게소)에도 잠시 들르기도 했다. 계속 훈춘시 쪽을 향해서 갔고 우측으로 두만강이 보였고 그 쪽 너머로 북한 지역이라고 했다. 우리가 지나가는 지역은 한반도의 동북부의 끝이 된다.

 

훈춘 지역으로 들어왔는데 이 도시는 연길보다는 약간 작으면서도 독특한 도시이디. 우리 일행은 이곳의 명품식당에 들러서 각종 요리들로서 푸짐하게 식사를 했다. 중국의 술도 나왔고 계속 나오는 채소와 고기 그리고 생선과 쌀 등으로 이루어진 중국의 요리들은 참으로 좋았고 구미에도 맞았다.

 

오늘의 피로도 풀겸 하면서 모두 즐겁고도 유쾌한 식사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예약이 된 인근의 호텔로 이동했고 각자 배정이 된 방으로 갔다.

나는 SK 브로드밴드의 사진담당 기자와 함께 같은 방인 422호실을 사용하게 되었다. 내일 오전 7(현지시간)2층에 있는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고서 다음 행선지인 용정 쪽으로 오전 8시에 출발을 하게 된다.

 

둘째 날(7.20.)
         ▶ 훈춘시에서 두만강 하류 지역 방문
        
▶ 용호각 전망대에서 중국, 북한, 러시아 3국 국경 지역 조망
       
▶ 화룡시로 이동하여 발해 중경현덕부 유적지 방문
       
▶ 대종교 삼종사 묘역 참배
       
▶ 청산리 대첩 기념비 방문
       
▶ 화룡시 호텔 체크인 및 숙박

훈춘 시의 호텔방에서 하루를 보냈다. 같은 방에서 하루를 보낸 김호석씨와 오전 7시경에 호텔의 2층에 있는 식당으로 가서 다른 분들과 같이 아침식사를 했다.
 

다함께 전세버스에 타고 오전 8시에 훈춘시의 두만강 하류지역인 녹둔도가 가까이에 있는 중국, 북한 그리고 러시아 3국의 국경이 만나는 곳을 행해 갔다.

 

가는 도중에 오른쪽 차창 바깥으로 두만강이 흘러내려가는 모습을 목도하면서 갔고 두만강은 도로 옆쪽으로 하류 쪽을 향해서 달리고 있었다.

대략 1시간 30분 정도 이상을 달려서 높은 전망대인 용호각이 있는 곳으로 왔다. 주말이라서 그런지 주위에 관광 또는 유람 차 나온 분들이 많았다. 대부분이 중국 사람들인 듯했다.

 

연길 지역은 물론 이 지역에도 조선족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한글간판이 달린 여러 상점들을 만날 수가 있었다. 두만강의 아래쪽에서 굽이쳐서 흐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저 쪽의 북한쪽 모습도 바라보였고 중국의 두만강 변으로는 산책로도 조성이 되어있었다.

 

용호각의 1012층에는 실외조망대도 있어서 거기에서 3국의 국경지역을 조망할 수 있었다. 북한과 러시아 간의 철도교량의 모습도 저 멀리 내려다 보였다. 이 인근에 또한 러시아의 도시인 하산도 있고 러시아 연해주의 안중근 의사와 동지들의 단지 동맹터가 있는 크라스키노도 있다.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두만강의 모습과 3국 국경지대의 넓은 벌판을 한 동안 조망하고서 걸어서 아래쪽으로 내려왔다.

 

일행은 다시 버스를 타고 훈춘 시내 쪽으로 가서 도로 변에 있는 한 식당에서 모두 함께 점심식사를 했다.

 

그리고 버스는 화룡시 쪽을 향해서 달렸다. 도중에 우리가 어제 들렀던 도문북부구에도 들렀다. 이쪽에서 건너편 쪽에 북한의 온성이 있는데 예전에 조선 조 세종 때의 6진이 설치되었던 곳도 이 인근에 있다. 그리고 역시 인근에 있는 도문 시에서 봉오동 전적지도 가까운데 이번의 우리의 여행 때는 거기에는 들르지 않는다.

 

중국의 넓은 땅을 실감하면서 간도 지역의 우리 민족의 애환을 절감하는 가운데 버스는 계속 달렸다. 우리의 일정상 원래 계획이 되어있던 용정시에 있는 용두레 우물, 윤동주 시인 생가, 대성학교 터 등은 이번에는 방문하지 않기로 했다.

 

화룡시 지역으로 와서 발해의 중경현덕부가 있던 곳으로 왔다. 이 서고성은 화룡현의 두도 평야의 서고향 북구성촌에 남아있다. 이와 관련해서 동행을 한 한가람 역사문화 연구소의 이덕일 소장께서 그 역사적인 내역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했고 박은식 선생의 사관에 대해서도 설명을 했다.

 

이와 관련한 문헌으로는 구당서, 신당서, 요서 등의 문헌들이 있다. 그리고 우리 일행은 다시 이동했다. 버스를 타고서 이곳을 이동하면서 지나쳤던 어떤 작은 마을의 담벼락에서는 옛 적의 우리 민족의 동요가사들이 적혀있는 것을 볼 수도 있었다.

 

옛 발해지역의 이 넓은 땅에 큰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조선족 동포들도 있다고 했다. 우리는 대종교의 삼종사 묘역으로 향해서 갔다. 이곳이 대종교의 삼종사인 벽포 서일 선생, 홍암 나철선생, 무원 김교원선생의 묘역이 있는 곳이다.

삼종사의 묘역 앞에서 김대하 지부장의 추도 아래에 잠시 참배의 의식을 올렸다. 주변에 풀들이 높이 자라나 있기도 했고 이곳에 대한 이정표 하나 없었다. 타국 땅에 있는 삼종사분들의 묘역을 우리나라의 국립묘지로 이장하는 방법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라고 김지부장이 말했다.

 

그리고 일행은 다시 전세버스에 올랐고 화룡시 청산리에 있는 청산리 대첩 기념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청산리 대첩은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사에 있어서 찬란한 금자탑의 하나로서 이곳은 대진서고성과 함께 오늘 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에 속한다.

 

길게 이어지는 계단 길로 해서 한 동안 올라가서 산의 언덕 위에 세워져 있는 청산리 대첩 기념비 앞으로 갔다. 모두 도열해서 예를 올렸다.

 

청산리 대첩은 항일 투쟁 사상 빛나는 전사로서 19201021-26일 김좌진, 홍범도장군이 통솔하는 항일연합부대가 연변 각 민족주민의 대폭 지원 하에 합동작전으로 백운동, 어랑촌 등의 수차 격전으로 일본 침략군을 섬멸했다.

 

모두 기념비를 둘러보면서 사진도 찍었고 한 동안 여기에 있으면서 이곳의 역사적 의의를 생각하다가 계단길을 걸어서 아래로 내려왔다. 날은 어느덧 저물어가고 있었고 약하게 비가 뿌려지기도 했다. 얼마만큼 이동을 해서 화룡시로 들어왔다.

 

화룡시에 야시장도 있고 번화한 모습도 나타내주고 있었다. 모두 숙박하기로 되어있는 호텔로 왔고 체크인을 했다. 그리고 모두 호텔의 2층에 있는 식당으로 가서 저녁식사를 했다. 술도 조금 씩 들었다. 참으로 여러 가지의 식사가 나왔고 모두 좋은 식사시간을 가졌다.

 

내일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 등정을 하는데 참으로 기억에 길이 남게 될 등산이 되기를 간절히 바랬다. 이번 광복회의 역사탐방의 가장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가 백두산 등반인데 백두산 정상에 올라가서 맑고 푸른 천지의 참 모습을 보는 것이 모두의 소망이 되고 있다.

 

일제의 강압적인 무단침략에 대해서 맞서서 싸운 청산리대첩의 혁혁한 전승의 성과는 독립운동사에 찬연한 금자탑을 형성하고 있다.

일제는 한반도를 점령하고서 만주 내지는 중국 본토로 진출하려는 야욕을 지니고서 호시탐탐(虎視耽耽) 그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국권상실 후 일단 만주지역으로 후퇴한 우리나라의 자주독립 진영은 일제에 대해서 저항했고 또 투쟁을 하면서 자주독립의 역량을 배양해나갔다.

 

중국지역에서는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 등의 성과와 윤봉길 의사의 의거 그리고 임시정부의 수립과 제반활동, 광복군 창설 등의 독립을 향한 투쟁이 계속 전개되었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점령했고 만주로 나아갔고 또 중국 본토를 침범했고 태평양 일대에 있어서 미국과 전쟁을 벌여나갔고 자국의 군국주의 이념을 세계에 전개시키고자 했다.

 

일본은 자국의 역사에 있어서 다른 나라와 전투다운 전투를 벌인 일도 없고 오로지 근래에 있어서 근대화된 무력을 앞세워서 타국의 무단침략과 민간인 학살을 비롯한 노략행위를 일삼아왔다. 타국과의 큰 전쟁이나 타국으로의 침범은 일본의 역사에 있어서 찾을 수 없고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중반까지의 군국주의 역사, 침략과 패배의 역사는 오로지 최근에 와서야 이루어 진 것이다.

 

우리나라의 자주독립을 지향하는 투쟁은 중국에서 그리고 미국 등지에서 부단히 전개되었고 언제나 세계사의 정당한 조류와 보조를 맞추어 나가고자 노력해 왔다.

 

실로 청산리 전투가 의미하고 있는 바는 정의와 도덕의 세계를 수호하고 쟁취하기 위함이고 타국의 부당한 간섭과 침략에 대한 국가의 자주독립과 자유와 민주를 수호하기 위한 거룩한 투쟁으로서 그 의의는 참으로 크다고 할 수가 있다.

..............다음회에 계속됩니다

글 : 
송재호(광복회 대의원)
 

박태완 기자 (iybc365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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