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3일 (화) - 다섯째 날
▶ 집안시에서 광개토대왕비 관람
▶ 광개토대왕능 방문
▶ 장수왕릉(장군총) 관람
▶ 환도산성 둘러봄
▶집안시 호텔에서 숙박
오늘 아침식사는 오전 7시부터 9시까지 호텔의 1층의 식당에서 있게 되고 오전 9시에 일정에 들어서게 되었다. 우선 호텔 바깥으로 나왔고 호텔 오른 쪽으로 좀 가서 압록강변으로 나왔다.
압록강을 대할 적마다 항상 어떤 진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강변에는 여전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넓고도 시원하며 길게 뻗어나 있는 강변대로를 한 동안 걸었고 흐리지만 여전히 꾸준하게 꾸역꾸역 흘러내리는 압록강을 조망했다.
숙소에서 이동해서 먼저 광개토대왕비가 있는 곳으로 갔다. 이 비는 고구려 29대왕 장수왕이 재위 2년(414)에 부친의 업적을 기려 세운 훈적비이다.

대석과 비신 일부는 땅속에 묻혀있다. 세 면에 걸쳐서 1,775자가 새겨져 있는 것으로 통상 알려져 있다. 그러나 또한 판독여부가 불분명한 부분이 있고 비석이 불규칙해서 글자 수 통계에 이론(異論)도 있다.
바깥쪽에서 바라보다가 비석이 있는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비신을 만지거나 사진을 찍는 것은 금지되어있고 공안이 감시를 하고 있었다. 다시 도보로 잠시 이동해서 광개토대왕능이 있는 곳으로 갔다. 전에도 이곳에 왔었는데 그 때보다 모든 것들이 더 잘 정비되고 보완이 되어있었다. 광개토대왕능은 작은 동산처럼 여겨졌고 위쪽으로 올라가면 대왕부처의 시신을 모셔두던 곳이 빈 채로 남아져있다.

그리고 다시 버스로 잠시 이동했고 장수왕릉 앞으로 왔다. 이 능은 장군총으로 부르기도 하고 서남쪽 2km 거리에 광개토대왕 능비와 대왕능이 있다. 이 능의 기단부의 뒤로 화강암 표면은 정성들여 가공한 절석을 7단의 층을 이루도록 계단식으로 쌓아 외형상 피라미드와 같은 모습을 갖추었다.
오후에는 옛 고구려 성이었던 환도산성을 둘러보았다. 이 산성은 집안 시내에서 북쪽으로 2.5km 떨어진 해발 676m의 산중에 있는 성이다. 평상시에는 집안에 있는 평지성인 국내성에 거주하다가 적이 침입해오면 이 산성으로 대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벽을 쌓는 데에 있어서 산의 능선을 적극 활용한 지혜가 돋보였다.
성의 동,서, 북 삼면은 험준해서 자연지형을 성벽의 기초로 삼고 부족한 곳에 돌을 쌓아 보충했다. 타원형으로 조성된 성벽의 총 길이는 6,951m이고 험준한 서쪽을 재외한 삼면에 각각 1-2개의 문을 설치했다. 산성의 바로 남쪽 아래에는 압록강의 지류인 통거하가 흐르면서 해자의 역할을 했다.
일행은 다시 전세버스에 올랐고 호텔로 되돌아왔다. 오후의 시간이 아직 상당히 남아있었고 나는 오후의 남은 시간을 휴식을 취했고 한 때 바깥쪽으로 나가서 압록강변을 산책하기도 했다.
저녁때에 1층의 로비에서 모두 만났고 압록강을 굽어보는 한 식당의 2층으로 가서 저녁식사를 했다. 압록강은 언제 바라보아도 조용하게 흘러내려가고 있었다.
이 근처에 야시장이 있어서 다른 몇 분들과 같이 두루 둘러보았다. 그리고 건너편의 광장으로 갔고 여기에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또한 여러 사람들이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다시 호텔로 되돌아왔다.
백두산은 애초부터 우리 민족의 건국신화와 관련이 되고 있으며 국가의 모든 문명, 문화의 원류로서 여겨져 왔다. 또한 국가의 출발지인 동시에 우리가 언제나 지향해야 할 종착점, 낙원으로서까지 여겨지고 있다.
우리나라에 있어서는 물론이고 만주족도 자신의 국가의 형성처를 백두산에서 찾고 있다.
먼 곳까지 포함한 이 일대의 문화가 백두산을 모태로 하고 있으며 일제강점기의 우리의 독립운동도 백두산 일대를 그 근거지로 해서 줄기차게 전개되었다.
애초에 나라를 세웠던 원동력이 되었던 곳이 나라가 와해된 다음에 다시 나라를 일으켜 세우고자 뜻을 모으는 데 있어서 그 원천이 되고 있다. 단군왕검 설화가 백두산 천지와 관련되어 있고 고구려 또한 애초에 그 대국의 본거지를 백두산 근처로 택하고 있다.
백두산 인근에 산재하고 있는 선대들의 독립운동 유적지들은 그 본래의 연원을 캐고 보면 이러한 심원하고도 심대한 내력이 근원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태초의 신화가 배태된 곳이고 국가가 성립된 곳이고 중요국가들도 이곳을 근원으로 해서 성립되었다.
나라가 붕괴되었을 때에도 새로 나라를 일으켜 세우자는 장대한 꿈이 나래를 펴게 된 곳도 여기 백두산 일대였다.
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꿈과 신화의 시원이요 장래의 이상과 웅대한 염원의 본원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24년 7월 24일 (수) - 여섯째 날
▶ 환인현의 오녀산성 박물관 방
▶ 신빈현의 청영릉 관람
▶ 심양시로 이동하여 숙박
새벽에 일어나서 주변을 좀 정돈하고서 바깥으로 나갔고 압록강 강변으로 나갔다. 강변을 한 동안 산책했고 호텔의 1층에 있는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식사 뒤 잠시 다시 압록강변으로 나갔다. 우리 일행은 오전 9시에 전세버스를 타고 다음 행선지를 향해서 출발했다.
원래는 시내에 있는 집안박물관에 들르려고 했으나 박물관 개관 시간이 아직 되지 않았고 해서 다음 행선지인 환인현에 있는 오녀산성을 향해서 출발했다. 버스를 타고서 한 동안 갔고 버스 안에서 차창 바깥으로 지나가는 중국의 지역 풍경들을 바라보기도 했다.

오녀산성이 있는 곳에 도착했는데 산성 위로는 이번에 올라가지 않고서 이곳에 있는 박물관에 들르기로 했다.
오녀산성은 혼강 좌안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으로서 고구려 초기 도읍지 흘승골성(紇升骨城)이라고 하지만 삼국사기의 사료와 부합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또한 동명성왕이 고구려를 건국할 때 수도로 삼은 졸본성이 바로 이 곳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발굴조사를 할 때에 청동기 사대, 고구려 시대, 그리고 요금시기의 유적, 유물들이 발굴되었다. 오녀산성은 앞 쪽에서 바라보면 바위 부분으로 이루진 것이 특이한 부분이 있어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도 했다.

나는 전에 이곳을 여행할 적에 산성 위로 올라가서 현장을 살펴보기도 했었다. 그 대신에 우리가 찾은 옆에 있는 박물관은 자못 컸고 오녀산성에 대해서 잡다하고도 해박한 자료들을 풍성하게 지니고 있었다.
오녀산성을 보고서 일행은 버스에 올랐고 한 동안 이동해서 신빈현의 청영릉이 있는 곳으로 왔다. 청영릉은 청나라 시조 누르하치의 조상들의 릉이다. 원래는 흥경릉이었고 요녕성 무순시 신빈현 영릉진에 있었다.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아서 만주족의 특색을 잘 드러내고 있다. 2004년에 명청 왕가 릉침 중의 하나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일행은 충분하게 시간적 여유를 지니고서 영릉의 이곳저곳을 상세하게 둘러보았다. 과거 만주족이 세웠던 청나라의 역사의 현장을 둘러본다는 실감이 나기도 했다.

오늘 우리가 거기로 향하고 있는 심양시는 청이 건국을 해서 베이징으로 이전하기까지의 청의 수도이기도 했던 곳이다. 한 동안 일행은 영릉을 구경했고 또 단체사진을 찍었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버스를 타고서 한 동안 이동해서 무순시를 거쳐서 심양시로 들어왔다. 심양시는 넓고 컸고 고층빌딩들이 곳곳에 임립(林立)하고 있었고 대도시의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내일 우리 일행은 심양시에 있는 문화유적지를 둘러보고서 오후 6시에 있게 되는 인천행 항공기에 오르기 위해서 심양공항으로 가게 된다.
2024년 7월 25일 (목) - 일곱째 날
▶ 심양시 백화점 방문
▶ 요녕성 박물관 관람
▶ 봉집보 방향으로 이동 시도 (우천으로 인해 취소)
▶심양공항에서 인천공항으로 귀국
오늘 심양시의 날씨는 계속해서 세차게 비가 내렸다. 이곳에서도 아침식사시간이 오전 7시에서 9시까지로 되었고 오전 9시에 일행은 호텔에서 나와서 버스에 오르게 된다. 아침식사를 하고서 다시 호텔방으로 되돌아갔다.
11층의 호텔방에서 그리고 호텔의 복도의 한 쪽에서 내려다보니 심양시의 큰 규모의 모습들과 우뚝 솟아오른 큰 빌딩건물들의 모습들이 도시 곳곳에서 목도되었다.
우리 일행은 오전 9시에 다시 전세버스에 올랐고 비가 내리고 있는 가운데 심양시를 한 동안 이동했고 큰 거리에 있는 한 백화점으로 갔다.
여기에서 일행은 백화점 안으로 들어가서 이리저리 구경을 한 뒤에 다시 입구 쪽에서 만나기로 했다. 다른 여러분들과 같이 백화점 내부를 둘러보았고 각종 전시물들을 보았고 또 가격들을 알아보기도 했다.
백화점 내부는 매우 번화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한 동안 백화점 내부를 둘러보았고 다시 바깥으로 나왔다. 비는 여전히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서 심양시내를 한 동안 이동했다. 차창을 통해서 바깥쪽을 보니 비로 인해서 도로 한 쪽에 빗물이 많이 고여서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빗물이 매우 많이 고여 있는 곳도 있었고 차량들의 속도는 느려지고 있었다.
우리는 요녕성 박물관 앞으로 왔다. 박물관은 겉이 매우 웅장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북방에서 일어나 성장했던 말갈족과 만주족 그리고 약간의 고구려 문물을 이곳에서 볼 수 있었다.
박물관의 3층에서 선사시대, 고대와 관련해서 전시를 하고 있었다. 이 3 전시관이 아무래도 우리의 선조들과의 역사와 관련이 된 부분들이 있어서 우리는 주로 3관을 두루 구경했다. 여럿이 함께 구경하면서 또 사진들도 찍었다. 한 동안 구경했고 다시 1층으로 내려왔고 모두 여기에서 합류했다.
바깥으로 나오니 여전히 비가 거세게 내리고 있었다.
일행은 다시 전세버스를 타고서 이동했고 한 한식 전문식당으로 갔다. 각자 김치찌개, 곰탕, 돌솥비빔밥 등을 주문했다.
식사 뒤 모두 바깥으로 나왔다. 이덕일 소장이 명과 고려-조선의 국경이었다고 하는 봉집보(奉集堡)에 대해서 설명했고 우리가 지금 버스를 타고서 그 쪽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나중에 가이드가 그에 대해서 설명을 한 대로 우천으로 인해서 그 쪽으로 접근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기도 해서 그 앞쪽으로 갔다가 다시 버스를 돌려서 심양공항 방향으로 향하게 되었다.
일행은 공항으로 왔고 지부요원들, 가이드 등의 안내를 받아서 비행기를 타고서 다시 인천공항으로 가게 되는 제반수속을 해나갔다. 짐을 부치고 여권을 받고서 비행기를 타는 곳으로 들어갔다.
종일에 걸쳐서 비가 내리는 날씨였는데 이제 날씨는 다시 소강상태가 되어있었다.
대략 1시간 20분 정도의 비행시간을 가진 뒤에 비행기는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여러 승객들과 같이 제반수속을 거쳐서 바깥쪽으로 나왔고 각자 짐들을 찾았다.
다시 바깥쪽의 공항버스 타는 곳으로 나왔고 얼마 뒤에 공항버스에 올랐고 서울 시내 쯕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