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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7-20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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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人영주] 영주·봉화가 키운 화학계의 거장 금교창 박사...한국 화학계를 이끈다

제55대 대한화학회 회장 선출

기사입력 2025-07-29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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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대한민국 화학계는 새로운 리더를 맞이하게 된다. 세계적인 학술지에 100여 편이 넘는 논문을 게재하고, 90건 이상의 특허를 등록했으며, 항암제 및 mRNA 백신 전달체 기술이전 등 혁신적인 연구 성과를 쌓아온 금교창 박사가 제55대 대한화학회 회장으로 선출되어 20261월부터 임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카이스트(KAIST) 화학과 1기 졸업생이라는 상징적인 이력부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에 이르기까지, 그의 30여 년 세월은 대한민국 과학 발전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연구실이 아닌, 경상북도 봉화의 흙냄새와 영주의 골목길에서 시작되었다. 봉화 도촌초등학교(29), 영주중학교(31), 영주고등학교(10)를 졸업한 그는 영주와 봉화의 정서 속에서 자랐다.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농사와 장사로 자식들을 키워낸 어머니의 헌신 , 신문 배달을 하며 새벽을 달렸던 소년의 땀방울 , 그리고 그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꺼지지 않았던 '학문의 즐거움'에 대한 열망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 위치한 그의 연구실을 찾아 '화학을 살리겠다'는 강한 포부를 안고 화학계의 새로운 미래를 향해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금교창 박사을 만나 그의 어린 시절과 학문적 여정, 그리고 미래 과학도들에게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들어보았다.

 

Q. 박사님의 어린 시절은 경상북도 봉화와 영주에서 시작된 것으로 압니다. 척박할 수 있었던 환경 속에서 과학에 대한 흥미를 갖게 된 특별한 계기나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신가요?

A. 제 아버지의 고향은 봉화군 상운면 신라리이고 저의 고향은 봉화군 화천리입니다. 사실 제 어린 시절 환경은 과학보다는 인문학에 훨씬 가까웠다고 할 수 있어요. 저희 집안은 할아버지께서 한학자이셨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한문 공부를 정말 많이 했습니다. 밤이면 할아버지께서 들려주시던 이야기가 며칠 뒤 한문책에 그대로 나오는 것을 보며 신기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때문에 제 적성 검사를 하면 늘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반반씩 나오곤 했습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이 서양 과학을 요구했고, 저는 새로운 학문을 배우겠다는 마음으로 과학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원하셨던 인문학이 아닌 과학을 선택하는 저에게 서운함이 크셨는지 할아버지께서는 집안의 책을 다 버려야겠다며 며칠간 식사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제 결심은 확고했습니다.

 

 

제게는 어머니의 애정과 가르침이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제가 세 살 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어머니께서 농사와 장사를 하시며 저희 삼 남매를 무척 고생하며 키우셨습니다. 제 삶의 70~80%는 그런 어머니의 강인한 삶의 태도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형님과 함께 교육을 위해 영주로 나와 생활했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중학교 2학년 때 친구의 권유로 신문 배달을 시작해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매일 새벽 4시에 신문을 돌렸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수금을 하러 신문사로 달려가는 생활의 연속이었죠. 영주 시내 골목골목을 누비며 사람들을 만나고, 신문을 권하고, 수금을 하면서 세상을 배웠고, 담대함도 키웠습니다. 매일 새벽 뛰어다닌 덕분에 체력도 무척 좋아져서, 고등학교 마라톤 대회에서는 체육 특기생들을 제외하고 1등을 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힘든 시간이었지만, 이 경험들은 제 인생의 가장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사람들과 부딪히며 소통하는 법을 배웠고,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는 체력과 정신력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봉화와 영주에서의 그 시절이 지금의 저를 만든 뿌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카이스트 화학과 1기 졸업생으로 시작해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연구와 학회 활동을 병행해 오셨습니다. 지치지 않고 달려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습니까? 특히 '매일 1%의 노력'이라는 말씀이 인상 깊었습니다.
 

A. 가장 큰 원동력은 '재미'였습니다. 흔히들 의사가 되면 아내가 좋고, 법관이 되면 아버지가 좋고, 과학자가 되면 본인만 좋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가족들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이지만, 저는 학문의 길이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새로운 것을 알아가고, 몰랐던 것을 깨닫는 기쁨이 저를 움직였습니다.

 



물론 그 길에서 훌륭한 스승님들을 만난 행운도 따랐습니다. 퇴직하실 때 저를 찾아주신 초등학교 은사님이 그러하셨고, 순수한 학문의 즐거움을 깨닫게 해주신 포항공대 지도교수님, 학자로서의 명예와 리더의 자세를 가르쳐 주신 서울대 지도교수님 등 많은 분들이 지금의 제가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회사에서는 효율의 중요성을, KIST에 와서는 팀워크의 힘을 배웠습니다. 이 모든 가르침이 제 연구 인생의 큰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매일 1%의 노력'은 제가 늘 가슴에 품고 사는 신조입니다. 수학적으로 계산해보면, 매일 1%씩 더 노력하면(1.01) 1년 뒤에는 약 37배가 넘는 결과를 얻지만, 매일 1%씩 덜 노력하면(0.99) 원래 능력의 3%도 채 남지 않게 됩니다. 그 미세한 차이가 엄청난 격차를 만든다는 것을 알기에, 어제보다 조금 더 알기 위해, 지식 하나, 노하우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영혼을 팔아도 좋겠다는 자세로 임했습니다.

 

새벽까지 실험하고, 주말에도 연구실을 지키는 삶이 고단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겁니다. 50대 중반까지는 어린 시절 영주와 봉화에서 다져진 체력으로 버텼지만, 지금은 체력적으로 힘들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화합물이 만들어졌을지 확인하러 분석실로 뛰어갈 때의 그 두근거림, 그 설렘이 모든 힘든 과정을 보상하고도 남았습니다. 그 즐거움이 있었기에 30년 넘는 세월을 한결 같이 달려올 수 있었습니다.

 

Q. 박사님께서는 105여 편의 논문, 90건이 넘는 특허, 항암제 및 mRNA 백신 전달체 기술이전 등 혁신적인 연구 성과를 이루셨습니다. 여러 성과들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함께, 그중 가장 보람 있었던 연구는 어떤 것이었는지요?

 

A. 저는 순수 화학 합성을 시작으로 의약화학, 백신 개발, 그리고 최근에는 인공지능을 이용한 신약 개발까지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수행해왔습니다. 이 모든 연구의 근간에는 '물질'에 대한 이해가 있습니다. 우리 주변의 모든 것, 배터리부터 의약품까지 전부 화합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화학은 바로 이 물질의 구조와 성질, 기능과 변화를 탐구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학문입니다.

가장 보람 있었던 연구를 하나만 꼽기는 어렵습니다. 제게는 결과물 하나하나보다,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 자체가 큰 보람이자 기쁨이었습니다. 특히, 모두가 안 된다고 할 때, 수많은 실패 속에서 해답을 찾아냈을 때의 희열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지식, 아주 미세한 실험 조건의 차이가 엄청난 결과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을 발견했을 때, 그리고 제가 만든 화합물이 정말로 원하는 기능을 한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과학자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mRNA 백신 기술의 중요성이 부각되었습니다. 저희 연구팀 역시 mRNA 백신을 원하는 세포까지 안전하게 전달하는 '전달체'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이러한 연구들이 인류의 건강과 삶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은 연구자에게 큰 동기부여가 됩니다. 결국 화학은 인류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학문이며, 그 과정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제게는 가장 큰 보람입니다.

 

Q. 오랜 기간 연구를 지속하시면서 어려움이나 실패의 순간도 분명히 있었을 것 같습니다. 연구자로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과 이를 극복하신 방법에 대해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A. 물론입니다. 연구는 성공보다 실패가 훨씬 더 많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 좌절하고 고민합니다. 특히 초심자 시절에는 지식이 부족해 지도교수님께 꾸중을 듣는 일도 잦았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실패의 순간이야말로 가장 큰 배움의 기회입니다. 실험이 잘 진행될 때는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것들을, 실패했을 때 비로소 깊이 파고들게 됩니다. '왜 안 될까?'라는 질문을 붙들고 밤을 새워 관련 문헌과 책을 파고들다 보면, 어느 순간 새로운 해결책이나 새로운 반응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기쁨이 실패의 고통을 충분히 이기고도 남습니다. 그래서 저는 실패의 순간이 오히려 더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문제에 부딪혔을 때 '대관세찰(大觀細察)'의 자세를 가지려 노력합니다. 전체를 넓게 보면서도, 반응 과정에서 나타나는 아주 미세한 변화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관찰의 힘입니다.

 

그리고 지식을 얻기 위해 세 가지 방법을 모두 활용합니다. 선인들의 지혜가 담긴 '책과 논문'을 보고 , 나보다 뛰어난 '선배나 스승'에게 묻고 , 방대한 정보가 있는 '인터넷'을 찾아보는 것입니다.

 

결국 실패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실패에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배움의 기회로 삼아 더 깊이 파고드는 끈기와 열정입니다. 그 과정을 통해 얻는 깨달음과 지식이 쌓여 더 큰 성공의 밑거름이 되는 것입니다.

 

Q. '화학을 살리겠다'는 강한 포부와 함께 대한화학회 회장으로 선출되셨습니다. 현재 우리 화학계가 직면한 가장 시급한 위기는 무엇이라고 진단하시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첫 번째 행보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현재 우리 화학계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우선 학령인구 감소와 함께, 어렵고 힘들다는 인식 때문에 화학을 전공하려는 학생들이 급격히 줄고 있습니다. 많은 인재들이 의대 등 다른 분야로 빠져나가면서 수능에서 화학 선택 비율이 가장 낮은 과목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최근 연구비 삭감 사태까지 겹치면서 이공계 기피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선진국 반열에 오른 것은 과학 기술의 힘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산업의 근간이 되는 물질을 다루는 화학이 무너지면, 우리나라 산업의 근본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저의 첫 번째 행보는 '화학의 대중화'입니다. 화학이 결코 어렵고 재미없는 학문이 아니라, 우리 삶과 밀접하고 세상을 바꾸는 흥미로운 학문이라는 것을 널리 알려야 합니다.

 

이를 위해 대한화학회 내에 '화학대중화위원회'를 활성화하여, 유튜버나 작가 등 대중과 소통하는 분들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계획입니다. 재미있는 화학 실험이나 생활 속 화학 이야기 등을 통해 젊은 학생들이 화학에 친근감을 느끼고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궁극적으로는 화학을 공부한 인재들이 의사만큼 좋은 대우를 받고 경제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굳이 권하지 않아도 많은 인재들이 저절로 화학의 길로 모여들 것이라 확신합니다.

 

Q. 인공지능(AI) 시대의 도래가 화학 분야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것 같습니다. 인공지능이 화학 연구에 어떤 영향을 미치며, 미래의 화학자는 어떤 역량을 갖추어야 할까요?

 

A. 인공지능은 화학 연구에 있어 엄청난 기회입니다. 과거에는 연구자가 자신의 지식과 경험에 의존해 수많은 화합물 구조를 그려가며 신약을 디자인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인공지능을 활용해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가장 가능성 있는 후보 물질을 먼저 찾아내고 연구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일을, 자석을 들고 시작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습니다. 인공지능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두 가지가 필수적입니다. 첫째는 '빅데이터'입니다. 데이터가 없으면 인공지능은 학습할 수 없습니다. 둘째는 그 인공지능을 다루고 결과를 해석할 수 있는 '인간의 지식'입니다. 인공지능이 제안한 결과를 이해하고, 잘못된 결과를 비판적으로 걸러내고, 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해 인공지능에게 올바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깊이 있는 이론적 기반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따라서 미래의 화학자는 단순히 실험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빅데이터를 이해하고 인공지능이라는 강력한 도구를 자유자재로 활용하여 창의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융합적 역량을 갖추어야 합니다. 화학이라는 학문의 본질을 깊이 이해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여 연구의 효율과 혁신을 극대화해야 하는 것이죠. 화학의 세계는 우주보다도 넓기에, 인공지능은 그 광대한 세계를 탐험하는 훨씬 더 재미있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Q. 마지막으로, 미래의 과학자를 꿈꾸는 젊은이들과 고향인 영주, 봉화의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시다면 부탁드립니다.

A. 우리 영주와 봉화는 예부터 선비의 고장으로, 어른을 공경하는 예절과 공동체를 위해 희생할 줄 아는 배려의 문화가 살아 숨 쉬는 특별한 곳입니다. 저는 이러한 독특하고 훌륭한 문화적 자산 위에서 성장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자부심을 가슴에 품고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제가 어린 시절 한학을 공부했지만 결국 서양의 과학을 받아들여 제 영역을 넓혔던 것처럼, 우리 후배들도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변화를 읽고 더 큰 꿈을 꾸어야 합니다. 제가 겪었던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은 모든 것이 풍요롭고 자유로운 시대입니다.

 

이런 좋은 환경 속에서, 영주와 봉화의 후배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세계적인 꿈을 펼쳤으면 좋겠습니다. 그 꿈이 화학이든, 다른 어떤 분야든 상관없습니다. 한 명 한 명이 큰 꿈을 가지고 도전하여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서는 인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영주와 봉화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세계가 주목하는 고장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금교창 회장과의 인터뷰는 화학계의 거장이 될 때까지 걸어온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어린 시절부터 그를 이끌어주신 어머니의 헌신과 믿음이삶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하였고, 그를 성장으로 이끈 것은 새벽 골목을 누볐던 소년의 성실함이었다.

"어머니는 제가 밤늦게 공부하면 그만하고 자라고 하셨고, 남자는 돈을 충분히 갖고 다녀야 한다며 없는 살림에도 늘 넉넉히 챙겨주셨습니다. 그 큰 스케일의 믿음이 저를 더 크게 생각하는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서울대 낙방 후 방황하던 아들에게 "내일까지 서울 종로학원 등록 마감"이라며 보따리를 싸주던 어머니의 결단이 없었다면 , 오늘날 화학계의 거목 금교창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인생은 배움과 성공의 기회가 되었던 실패와 , 매일 거르지않고 쌓아갔던 1%씩 노력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결과다.

 

이제 그는 개인의 영광을 넘어,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화학의 부흥을 위해 다시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봉화와 영주의 청정자연과 인문학적 문화 속에서 자란 그는 이제, 미래 세대에게 화학의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가장 든든한 거름이 되고자 한다. 그의 뜨거운 열정과 깊은 통찰력이 이끌어갈 대한민국 화학계의 새로운 장을 기대한다.

 

≫≫≫  금교창 박사 프로필 ≪≪≪

● 학력

KAIST 경영대학 최고경영자 과정 수료 (2018)

UCLA 의과대학 박사후연구원 (2006-2007)

서울대학교 화학부 이학박사 (2001-2005)

POSTECH 화학과 이학석사 (1990-1992)

KAIST 화학과 이학사 (1986-1990)
 

경력

서울대학교 총동창회 종신이사 (2022-현재)

• ㈜에스엠엘바이오팜 사외이사 (2022-2024)

특허심판원 전문심리위원 (2021-2023)

코로나19 치료제/백신 개발 범정부 전문위원회 위원 (2021-2022)

경희대학교 객원교수 (2018-2020)

경기도 기술닥터사업 기술닥터 (2017-2023)

KIST 뇌의약연구단 단장 (2016-2020)

()cite_start대정화금 사외이사 (2013-2016)

서울관세청 중앙관세분석소 분석기술협의회 위원 (2012-2019)

UST 바이오메디칼 융합전공 교수 (2008-현재)

고려대학교 화학과 겸임교수 (2008-현재)

KIST 선임/책임 연구원 (1996-현재)

• ㈜한일합섬 한효과학기술원 연구원 (1992-1996)

수상 이력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표창장 (2023)

KIST 공로상 (2022)

대한화학회 유기화학 학술상 (2019)

KIST 창의혁신상 (2011)
 

주요 활동

대한화학회 회장(2026-2027)

의약화학분과 회장 (2023-2024)

대한화학회 평의원 (2022-현재)

한만정학술상위원회 위원 (2022-2026)

이태규선생 기념사업회 이사 (2021-2025)

대한화학회 총무부회장 (2020-2021)

대한화학회 위원(2019-2021)

대한화학회 출판위원회 위원 (2018-2019)

대한화학회 유기화학분과 부회장 (2017)

대한화학회 학술위원회 위원 (2017-2020)

대한화학회 기금위원회 위원/부위원장 (2015-2023)

대한화학회 학회발전사업위원회 위원 (2015/2019)

대한화학회 여성위원회 위원 (2015)

대한화학회 화학기술진흥위원회 위원 (2010-2011)

대한화학회 총무실무이사 (2015)

대한화학회 산학협력 실무이사 (2009)

대한화학회 종신회원 (2006-현재)
 

기타 학회 활동

한국의약화학회(KSMC) 창립 이사 (2024-현재)

AIMECS2023 조직위원회 총무위원장 (2022-2023)

한국화학관련학회연합회 이사 (2020-2021)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 대의원 (2020-2021)

ChemMedChem (IF 3.6) 자문위원 (2018-현재)

국제정밀화학제품학회 조직위원 (2009)
 

연구 분야 및 업적

유기 합성 및 의약화학 분야에서 뇌신경, 항생제, 항암제, 항바이러스제, 분자 영상제, mRNA 백신 전달체 등을 연구하여 의약품 개발 기반 구축에 기여했습니다.

Angew. Chem. Int. Ed. 등을 포함한 150편의 논문과 3편의 도서 챕터를 발표했습니다.

99건의 특허를 출원하고 7건의 기술이전을 수행했습니다.

 

 

김소영 기자 (iybc365news@naver.com)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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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길
    2025- 07- 29 삭제

    과학자분들이 인정받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