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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2025 에든버러 프린지 현장에서 본 ‘영주형 축제’의 길

지역의 정체성을 살릴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해야!

기사입력 2025-08-29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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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의 고풍스러운 수도 에든버러가 8월이면 거대한 캔버스로 탈바꿈한다. 고색창연한 성벽과 좁고 긴 골목길, 그리고 중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건물들은 어느새 수많은 사람들의 활기 넘치는 소리와 다채로운 색채로 가득 채워진다.

 

 

공식 개막일이 되면 에든버러 성과 홀리루드 궁전을 잇는 상징적인 거리 '로열 마일'은 거리 예술가들의 즉흥적인 퍼포먼스와 관광객들의 열띤 함성으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인다. 이곳에서는 동물 가면을 쓰고 코믹한 몸짓을 하는 공연팀부터 짤막한 거리극으로 공연을 홍보하는 배우들까지, 그 어떤 경계도 없이 자유로운 상상력이 펼쳐진다. 골목을 걷다 보면 벽면을 온통 뒤덮은 공연 포스터들이 도시의 얼굴을 새롭게 단장하고,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멜로디와 연극 대사들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은 단순히 공연을 보고 즐기는 축제를 넘어, 도시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예술 무대로 재탄생시키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도시는 축제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내어주고, 예술가들은 그 위에서 시공간을 넘나드는 상상력을 마음껏 펼친다.

 

이 모든 광경은 한 편의 잘 짜인 기획물이라기보다는, 그저 자연스럽게 도시의 숨결과 어우러지는 유기적인 생명체처럼 느껴진다. 이처럼 도시의 모든 공간과 사람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축제 모델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인구 50만 명의 고풍스러운 도시가 어떻게 이토록 거대하고 역동적인 문화 플랫폼이 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매년 수많은 예산을 투입하며 지역 경제 활성화를 꿈꾸는 우리나라 영주와 같은 지역 축제들은 과연 어떤 길 나아가야 할까?

 

경계를 허무는 도시의 축제, 에든버러 프린지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의 가장 놀라운 특징은 도시의 모든 공간이 유연하게 공연장으로 변모한다는 점이다. 축제 기간 동안 에든버러는 단순히 관광객을 맞이하는 도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예술가들의 무대이자 관객들의 객석이 된다. 대형 극장을 새로 짓거나 별도의 축제 공간을 마련하는 대신, 기존의 도시 인프라를 활용하여 공연장을 확장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는 에든버러 축제의 근본적인 철학이 '공간의 탈중심화'에 있음을 보여준다. 교회, 성당, 학교, 대학 기숙사, 심지어 펍(pub)과 레스토랑까지 모두 임시 극장으로 탈바꿈하여 사용된다.

 

 

이러한 공간 활용 방식은 단순한 운영상의 편리함을 넘어, 다층적인 사회적, 경제적 효과를 낳는다. 먼저, 막대한 비용을 들여 새로운 극장을 건설하고 유지해야 하는 부담을 덜어낸다. 이는 많은 지자체들이 겪는 '백색 코끼리'(개점휴업 상태의 거대 공공건물) 문제를 원천적으로 방지한다.

 

 

그 결과, 프린지 페스티벌에서는 촛불 아래 펼쳐지는 고전 발레부터 일본 전통 악기와 현대 기술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퍼포먼스, 그리고 청각장애 퀴어 드래그 쇼와 같은 경계를 허무는 파격적인 작품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처럼 다양한 예술적 시도는 더 넓은 스펙트럼의 관객을 끌어들이고, 도시 전체로 축제의 활력을 분산시킨다. 축제는 특정 장소에 국한된 이벤트가 아니라, 도시의 모든 골목과 건물을 통해 끊임없이 확장되는 유기적인 문화 생태계로 기능하는 것이다.

 

개방과 포용의 철학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은 철저히 '기획된' 축제인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EIF)과 달리, 1947, 공식 초청을 받지 못한 8개의 공연단체가 주변부(Fringe)에서 자발적으로 공연을 펼친 것이 그 시초다. 주변부에서 이루어지는 공연들을 기본 취지와 다르다고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중심 가치로 만들어내는 유연함과 포용력이 오늘날의 세계적인 축제로 거듭난 프린지 페스티벌의 핵심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프린지는 참가비만 지불하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열린 축제'인 것이다.

 

 

무대 언어도 자유롭다. 버려진 농약 분무기나 장난감 플라스틱으로 만든 악기를 연주하는 공연부터, 실제 커플이 무대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파격적인 퍼포먼스까지 현실과 공연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들이 끊임없이 이루어진다.

 

축제 기간의 안전과 청결 또한 단순히 관리 주체의 효율성만으로 달성된 것이 아니다. 이는 축제를 함께 만들어가는 시민과 관객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공동체 의식에서 비롯된다. 관객들이 거리 공연 관람 후 팁을 주는 것을 당연한 예의로 여기고 , 환경 부담을 줄이기 위해 대중교통 이용을 권장하는 등 ,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도시의 지속 가능한 축제 문화를 형성한다.

 

축제가 특정 기관이 주도하는 '이벤트'가 아니라, 도시 전체가 공유하는 '경험'이 될 때, 그 안의 모든 구성원은 책임감을 느끼고 축제의 성공을 위해 능동적으로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영주 한국선비문화축제의 정체성, 선비정신의 현주소는?

에든버러의 열린 축제 문화와 비교 분석하기 위해 영주시의 대표 축제 중 하나인 '영주 한국선비문화축제'를 살펴보기로 했다. 이 축제는 "우리 민족의 정신문화의 뿌리를 탐색하고 선비의 삶의 풍류를 체험할 수 있는 지역문화축제"를 표방한다.

 



축제의 프로그램은 크게 주무대 공연, 보조무대, 체험 및 판매 부스 등으로 나뉘며, '고유제', '덴동어미 화전놀이' 등 다채로운 행사가 진행된다. 특히 개막과 폐막식에는 타 지역축제와 마찬가지로 인기가수들이 출연하여 사람들을 모으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
 

이는 축제가 특정 주제인 '선비 정신'을 중심으로 기획되었지만, 대중적 흥행을 위해 유명인 초청에 크게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축제를 방문한 사람들의 인원수로 성공 여부를 가리는 문제가 축제의 정체성을 잃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영주의 축제는 도시의 정체성을 보여 준다기보다는 지정된 구역에서 정해진 기간에, 사전에 기획된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전형적인 '이벤트' 모델을 따르고 있다.
 

또한 대중에게 선비정신에 대한 인지도가 약하고 호감도도 떨어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직적인 운영에도 문제가 있다. 의례적인 전통 재현과 선비와는 관계없는 이벤트성 프로그램들로는 진정한 선비의 의미를 전달하기에 무리가 있다. 이는 축제의 핵심 가치가 관람객이 아닌 조직 운영 위주로 기획되기 때문이다. 과거의 선비 정신을 현대에 적용하기에는 괴리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지하지만 선비의 고장이라 자처하는 지역에서 선비의 현대적 해석, 선비정신의 대중화를 위한 노력은 부족하다보니 이를 타이틀로 내건 축제도 정체성이 모호하고 대중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뼈아픈 현실이다.

 

 

에든버러 프린지의 경우 본래의 취지는 엄선한 작품들을 정해진 공연장에서 공연하는 것이었지만 주변 거리에서 자유롭게 펼쳐지는 공연들에 관객들이 반응하는 것을 보고 축제의 다양성을 수용하여 지금의 세계적인 축제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축제 관계자들은 관객 수에 연연하는 구태한 자세를 버리고 관객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살피는 열린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과 영주 한국선비문화축제는 축제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철학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한쪽이 도시를 유기적인 '생태계'로 보고 예술가들에게 자유로운 '플랫폼'을 제공한다면, 다른 한쪽은 특정 장소에서 정해진 기간 동안 열리는 '이벤트'로 축제를 규정한다. 이러한 철학의 차이는 축제의 운영 방식과 파급 효과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다음 표는 두 축제의 주요 운영 방식을 비교하여 보여준다.

 

 

비교 항목

에든버러 프린지

영주 한국선비문화축제

공간 활용

도시 전체가 공연장으로 변모. 교회, 학교, 펍 등 기존 건축물을 임시 극장으로 활용

문정둔치, 선비촌 등 지정된 축제 공간에서 개최. 

축제
참가 자격

참가비만 내면 누구나 참여 가능. '비기획'의 원칙으로 자율성 보장

주최 측의 기획에 따른 공연팀 초청. 지정부스 운영으로 차별화되지 않는 컨텐츠와 체험 제공. 유명 연예인 공연에 비중을 둠

운영 주체

프린지 협회 및 개별 공연장(교회, 학교 등) 운영. 예술가 중심의 분산된 권력

지방자치단체 및 관련 기관 주최, 주관. () 주도의 일방적 운영

재정 모델

예술가들의 참가비와 티켓 판매가 주 수입원. 저비용 고효율 구조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이 주 수입원. 지역 경제 활성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움

지역사회

참여도

관객의 팁 문화, 대중교통 이용 등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참여

주로 관람 위주의 수동적 참여. 외부 관광객 유치에 집중되어있으나 효과는 미미

 

이러한 비교는 우리 지역 축제가 직면한 근본적인 문제를 보여준다. 이러한 방식은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기 어렵고, 축제 기간에만 반짝 활성화될 뿐 지속 가능한 문화적 생명력을 부여하지 못한다. 결국 축제가 그 지역의 고유한 문화적 정체성을 진정으로 담아내지 못하고, ''이 주도하는 천편일률적인 이벤트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지역 축제, 관성적 예산 낭비와 고립된 콘텐츠

1990년대 지방자치제 도입 이후 한국의 지역 축제는 급격히 증가하여 현재 1,000여 개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은 단기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새로운 축제를 우후죽순처럼 만들어내고, 이는 결국 예산 낭비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축제들은 제대로 된 통계와 장기적인 계획 없이 관성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통계 부실은 정확한 성과 측정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축제는 그저 행사를 진행했다는 사실만으로 성과를 치부하게 만든다.
 



또한, 외부 관광객 유치에만 매달리며 지역 주민의 참여는 뒷전으로 미루는 경향이 짙다. "연예인 섭외에 목을 매는" 것이 현실인 만큼,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연예인 공연으로는 관광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 어렵다. 축제의 콘텐츠는 그 지역의 고유한 문화와 동떨어져 고립되고, 결국 실질적인 경제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영주 한국선비문화축제 또한 '선비 정신'이라는 훌륭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유명 연예인 초청 공연과 같은 흥행 요소에 지나치게 의존함으로써 본질적인 문화적 깊이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이 새로운 극장을 짓지 않고 기존 공간을 활용하는 것과 달리, 한국의 많은 지자체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문예회관과 같은 '하드웨어'를 먼저 지어놓고도 실질적인 활용도가 투자 비용에 비해 턱없이 낮다. 유연하고 지속 가능한 '소프트웨어'가 부재한 상태에서 물리적인 시설에만 의존하는 개발 패러다임이 낳은 결과다.

 

특히 영주 문화예술회관의 까치홀같은 경우, 최초 설계와 달리 건축되면서 규모 있는 공연 유치도 어렵고 전문적인 음향시설 등의 관리가 부족하여 최상의 공연을 구현하기 어려운 구조다. 시의 전시문화를 대표하는 철쭉 갤러리 역시 마찬가지다. 시민의 문화생활을 위한 시설이 전문가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채 졸속으로 이루어진 안타까운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축제에서 문화 생태계

그렇다면 우리 지역 축제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전문가들은 "별도의 민간 주도의 전담기구를 설치해 체계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조언한다. 민간이 주도하는 전문적인 전담 조직을 통해 축제는 단기적인 정치적 성과가 아닌 장기적인 문화적 비전 아래 운영될 수 있다.

 

축제의 성공은 유명 연예인 출연료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창작하고 실험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서 시작된다. 영주 한국선비문화축제가 '선비 정신'이라는 고유한 정체성을 진정으로 살리기 위해서는, 지정된 공간을 넘어 영주 시내 전체로 축제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은 어떨까? 젊은 예술가들이 영주의 빈 상점이나 폐교된 학교, 오래된 한옥 등을 활용하여 '선비 정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실험적인 공연을 펼치도록 지원하는 것도 제안해본다. 축제는 단순히 보는 이벤트가 아니라, 주민과 방문객이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한국의 지역 축제는 '무분별하게 증가하는' 수의 딜레마에서 벗어나 , '선택과 집중'을 통해 축제의 질을 높여야 한다. 에든버러 프린지가 모든 것을 포용하는 동시에, 축제 자체는 기획 없이 '플랫폼'의 역할에 충실한 것처럼, 우리 또한 '지역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창의적인 시도를 장려해야 한다.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도시의 모든 공간이 예술의 무대가 될 때, 비로소 축제는 '이벤트'를 넘어 그 지역의 지속 가능한 '문화 생태계'로 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영주만의 생태계를 만들어 가자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은 우리에게 예술의 힘이 거대한 자본이나 잘 짜인 계획이 아니라, 상상력과 자유, 그리고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신뢰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도시 전체를 극장으로 내어주고, 모두에게 무대를 열어주는 그들의 용기는, 축제의 성공이 도시의 물리적 크기가 아닌 상상력의 경계에 달려 있음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영주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많은 지역 축제들은 이미 풍부한 역사와 문화적 자원을 가지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자원을 단순히 전시하는 '이벤트'를 넘어,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지정된 공간의 경계를 허물고, 시민과 예술가들에게 도시의 캔버스 위에 자유롭게 상상을 칠할 수 있는 붓을 건네줄 때, 비로소 우리의 지역 축제는 한번 반짝하고 사라지는 일회성 행사가 아닌, 지역의 숨결과 함께 영원히 살아 숨 쉬는 문화적 유산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김소영 기자 (iybc365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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