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카네기홀의 화려한 조명 아래, 한국 창작 오페라 '선비'의 선율이 울려 퍼지며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던 순간이 있었다.
또한 지난해 8월,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는 1913년 경북 영주 풍기에서 피어오른 뜨거운 독립의 불꽃이 무대 위를 수놓았다.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무대에 올린 창작 오페라 '대한광복단'은 영주인들의 우국충절을 예술로 승화시키며 관객들에게 깊은 전율을 선사했다.
뉴욕 카네기홀 전석 매진을 기록한 오페라 '선비'에 이어 '대한광복단'을 통해 다시 한번 고향의 정신을 세계적 콘텐츠로 빚어낸 주인공, 바로 영주 출신의 최승우 대한민국창작오페라제작자협회 이사장(조선오페라단 단장)이다.
조선일보와 한국일보의 베테랑 뉴욕 기자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오페라단을 이끄는 예술 경영인으로 변신한 그의 삶은 그 자체로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하지만 그 화려한 이력의 근간에는 늘 고향 영주의 원당천과 소수서원의 선비 정신이 흐르고 있었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임을 몸소 증명해낸 최승우 이사장을 만나 그의 예술 철학과 고향 영주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들어보았다.
Q. 하망동에서 태어나 휴천동에서 자라며 '원당천'을 놀이터 삼아 보내셨다고 들었습니다. 이사장님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원당천의 풍경과 어린 시절의 추억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저에게 원당천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마음속에 선명히 남아있는 정서적 고향입니다. 지금 보면 작은 개울 같지만, 어린 저에게는 한없이 넓고 맑은 놀이터였죠. 모래가 아주 깨끗했고, 물 위에 반짝반짝 비치는 햇빛, 즉 '윤슬'의 아름다움은 제 미학적 감수성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기억은 나중에 창작 오페라 '선비'를 제작할 때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오페라 '선비'에는 어린이 합창단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들이 뛰어놀며 부르는 동요의 서정적인 정서는 바로 제가 원당천에서 뛰놀던 경험에서 나온 것입니다. 소백산의 푸른 기운과 원당천의 맑은 물결이 어우러진 영주의 풍경이 제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라 할 수 있습니다.
Q. 영주는 한국 정신문화의 창이라 불립니다. 이사장님께서 제작하신 창작 오페라 '선비'가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작품 속에서 강조하고 싶었던 영주만의 '진짜 선비 정신'은 무엇이었습니까?
A. 정부에서 우리나라 5천 년 역사를 대변하는 정신문화가 무엇인지 조사했을 때 결론은 '선비 정신'이었습니다. 이는 프랑스의 똘레랑스(관용), 영국의 젠틀맨십(배려), 미국의 개척 정신을 모두 아우르는 아주 깊고 귀한 정신입니다.
그 핵심은 '어질 인(仁)' 자, 즉 어진 마음입니다. 기독교적 사랑과 배려, 그리고 문화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까지 모두 이 '어질 인'에 녹아 있습니다. 저는 오페라를 통해 선비 정신이 낡은 유산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갈등을 해결하고 리더십의 근간이 될 수 있는 인류 보편의 가치임을 세계에 알리고 싶었습니다.
Q. 뉴욕 기자로 활약하시던 '베테랑 기자'가 오페라 단장으로 변신하셨을 때 주변의 우려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펜을 내려놓고 무대 막을 올리기로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A. 언론인으로 15년 넘게 활동하며 세계 곳곳을 누볐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우리 성악가들을 만났는데, 실력은 세계 최고인데 정작 한국에서는 그 뛰어난 인재들을 수용할 시스템이 없어 고통 받는 현실을 목격했습니다. 이 귀한 '보물' 같은 인재들이 마음껏 기량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여기에도 영주에서 배운 선비 정신, 즉 주변 사람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공동체를 이롭게 하려는 마음이 작용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페라단연합회를 조직하고, 대한민국오페라대상을 만들어 예술가들을 격려하는 일부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1948년 설립된 대한민국 최초의 조선오페라단을 맡아 경영 위기를 극복하고 사단법인으로 우뚝 세우셨습니다. 이 과정에서 선구자 이인선 단장의 정신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계승하고자 하셨습니까?
A. 이인선 선생님은 정부 수립 전, 폐허 위에서 사재를 털어 오페라라는 최고급 문화예술의 씨앗을 뿌린 분입니다. 저는 그분의 숭고한 정신을 잇되, 현대적인 경영 시스템을 도입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사단법인화와 공익법인 등록을 통해 재정의 투명성을 확보했죠. 이제는 단순히 외국 오페라를 수입해 보여주는 단계를 넘어, 우리 고유의 이야기를 담은 오페라를 만들어 세계로 수출하는 것이 이인선 단장님의 정신을 완성하는 길이라 믿고 있습니다.
Q. 창작 오페라 '선비'가 뉴욕 카네기홀에서 전석 매진을 기록했을 때, 당시 현지인들이 '선비'라는 낯선 주제에 공감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A. 사실 오페라를 보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게 쉽지 않은데, 카네기홀 현지 관객 중 눈물을 흘리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 목회자, 공무원, 교사분들이 찾아와 "이 시대 리더들이 꼭 봐야 할 정신"이라고 극찬하더군요.
언어는 달라도 음악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담긴 보편적인 사랑, 배려의 가치는 통했던 겁니다. 우리 전통 가락인 중중모리, 자진모리를 서양의 오케스트라로 세련되게 풀어낸 것도 큰 몫을 했습니다. 한복의 아름다운 색채와 선비의 고결한 기개가 미국 관객들의 가슴을 파고든 것이죠.
Q. 오페라를 웹툰으로 제작하시는 등 대중화에 앞장서고 계십니다. 혹시 영주의 또 다른 설화나 역사를 오페라로 제작해 영주를 알리고 싶은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A. 이미 실천에 옮기고 있습니다. 최근 풍기에서 시작된 '대한광복단'의 역사를 오페라로 제작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했습니다. 대한광복단은 1913년 풍기 상덕상회를 거점으로 결성된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상징적인 조직입니다. 단순히 저항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정강과 행동 요령을 갖춘 아주 드라마틱한 역사를 가지고 있죠.
이 작품을 통해 영주가 '선비의 도시'일 뿐만 아니라 '우국충절의 도시'임을 알리고 싶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반드시 고향 영주에서 이 공연을 올려 시민들과 자부심을 나누고 싶습니다.
Q. 외국 예술계 동료들에게 영주를 소개할 때 가장 먼저 자랑하시는 '영주만의 3대 매력'은 무엇인가요?
A. 첫째는 단연 인삼, 특히 풍기 홍삼입니다. 제 가까운 지인들 중 홍삼 선물 안 받아본 사람이 없을 정도죠. 둘째는 영주 사과입니다. 제가 뉴욕 기자 시절, 당시 뉴욕 주지사였던 쿠오모에게 영주 사과를 건네며 그 당도와 탄력을 직접 확인시켜준 적이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봐도 영주 사과가 최고라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셋째는 소백산과 원당천으로 이어지는 청정 자연 그 자체입니다. 영주의 맑은 공기와 물은 예술적 영감을 주는 최고의 자산입니다.
Q. 한국 오페라가 'K-컬처'의 차세대 주역이 되기 위해 가장 시급한 제도적 변화는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A. BTS가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던 건 남의 노래를 잘 불러서가 아니라 본인들만의 '창작곡'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외국 명작을 잘 부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만의 이야기가 담긴 창작 오페라가 활성화되어야 합니다. 정부와 지자체가 창작 오페라 제작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을 늘리고, 특히 해외 진출을 위한 전문적인 행정 지원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시급합니다.
Q. 지역 후배 중에는 제2의 최승우를 꿈꾸는 이들이 많습니다. 세계라는 넓은 무대를 가슴에 품기 위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요?
A. 지방이라는 물리적 거리는 결코 장애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고향 영주가 가진 독보적인 문화적 DNA를 나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세계적인 무대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뉴욕과 모스크바에서 쌓은 글로벌 경험과 제 몸속에 각인된 영주의 선비 정신을 융합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선 위치에서 전문성을 쌓되, 고향의 가치를 잊지 마십시오. "가장 영주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무기"가 될 것입니다.
Q.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A. 현재 제작한 오페라 '대한광복단'을 세계화하는 작업에 매진할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한국 오페라의 위상을 높이는 동시에, 우리 영주가 가진 자랑스러운 역사를 세계인의 가슴에 심어주고 싶습니다. 또한, AI 기술을 접목한 애니메이션 오페라 등 오페라가 전 세대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인터뷰 내내 최승우 이사장의 눈빛은 고향 영주를 이야기할 때 가장 반짝였다. 카네기홀의 전석 매진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거장의 가슴 속에는 여전히 원당천의 맑은 물결이 흐르고 있었다.
특히 1913년 풍기에서 시작된 대한광복단의 기개를 오페라로 재현해낸 그의 작업은 고향 영주를 향한 가장 큰 헌사라 할 수 있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임을 몸소 보여준 최 이사장. 그의 손끝에서 탄생할 다음 무대가 기다려진다. 아울러 그 무대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갈 영주의 고귀한 정신문화와 당당한 기개가 세계 곳곳에 닿게 하는 위대한 가교가 되길 기대해 본다.
▶최승우 이사장 프로필
2010~2026 현재 - (사)조선오페라단 제3대 단장, 클래식타임즈 대표
2015-2026 현재 대한민국창작오페라제작자협회 이사장
2007~2016 - (사) 대한민국오페라단연합회 창립 및 초대 사무총장
2007~2010 -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조직위원회 초대 사무총장
2015~2024 - 대한민국창작오페라페스티벌 조직위원회 초대 ~현 이사장
2008~2026 - (사)대한민국오페라대상 조직위원회 초대~현 사무총장
2016 - 뉴욕 카네기홀 최초 한국 창작오페라 ‘선비’ 공연-전석 매진
2015 - 대한민국오페라대상 작품 대상 수상 창작오페라 선비
2023 - 대한민국기독예술대상 수상 CTS기독교TV
2013 - 예술의 전당 오페라 하우스 ‘라 트라비아타’ 공연
2024 - 미국 뉴욕 카네기홀 대한민국창작오페라페스티벌 우수 작품
주기철의 일사각오- 열애 공연
2025- 대한민국오페라대상 창작오페라 대한광복단
창작 최우수상 및 대본, 작곡상 수상 3관왕 달성
※ 2000년~ 현재 - 열애,카르멘, 라 트라비아타 등
그랜드오페라와 각종 중대규모 음악회와
갈라콘서트 500여 회 기획 제작 및 예술 총 감독
▶ 음악 외 이력
- 현 서울서부지방법원 조정위원(2017~2026년)
- 전 민주 평통 위원 2016년
- 전, 조선일보, 한국일보 뉴욕지사 기자, (1986~1991)
- 뉴욕시경 표창(1988) 올해의 기자상(1990)
뉴져지 올해의 한국인상(2016)
▶ 저서
- [거꾸로 본 서울- 특파원 취재기행 모스크바 뉴욕 서울],
영웅출판사 발행
- [뉴욕한인 청소년 범죄와 전쟁]
한국일보뉴욕지사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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