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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부처 에이스에서 영주의 아들로... 송명달 전 차관의 ‘영주사랑 25시’ 북콘서트 성료

설득과 조율의 철학을 담아낸 ‘영주사랑 25시’

기사입력 2026-02-01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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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월의 마지막 날, 소백산의 칼바람이 영주 시내를 휘감았지만 영주시민회관 안은 영주에 대한 애정의 열기로 가득 찼다. 해양수산부의 핵심 요직을 거쳐 차관이라는 중책을 완수하고 돌아온 송명달 전 차관의 저서 영주사랑 25출판기념 북콘서트가 열린 현장이다. 송 전 차관의 북콘서트를 축하하는 시민들이 시민회관 밖까지 긴 줄이 늘어설 정도로 호응은 뜨거웠다.

 

 

 

이번 행사는 단순한 개인의 출판기념회를 넘어, 30년 넘게 국가 정책의 한복판에 서 있던 한 행정 전문가가 자신의 삶과 철학을 고향 영주의 미래와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보고하는 진심 어린 복귀 보고서였다.

 

행사장에는 이른 시간부터 영주 시민은 물론 정·관계, 경제계, 학계 인사들이 대거 운집했다. 특히 영주의 전직 시장들이 정당과 정파를 초월해 한자리에 모인 장면은 송 전 차관이 지닌 지역 내외의 두터운 신망과 갈등 조율의 역량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각계 인사가 증언하는 행정가 송명달의 진면목

1부 행사의 백미는 송 전 차관의 인품과 실무 능력을 곁에서 지켜본 인사들의 축사였다. 첫 번째 축사에 나선 유기준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송 전 차관이 운영지원과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의 일화를 소개하며 좌중의 이목을 끌었다.

 


유 전 장관은 당시 송명달 과장이 가져오는 인사안이나 예산안은 장관인 제가 도저히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완벽했다. 영주식으로 표현하자면 쇠를 댈 데가 없는치밀한 기획력이었다그는 해양수산부뿐 아니라 기획재정부 등 타 부처 고위 인사들과도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한 국가대표급 인재였다. 대한민국에 손흥민이 있다면, 영주시에는 송명달이 있다고 극찬했다.
 


이어 송 전 차관의 중학교 3학년 담임이었던 유영위 은사의 축사가 이어지자 장내에는 숙연한 감동이 흘렀다. 유 교사는 “1980년 당시 송명달 군은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친구들 사이에서 신망이 두터웠던 영특한 학생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송 전 차관의 부친인 송필현장학사의 가르침인 부끄러움을 아는 선비가 되어라, 기초가 튼튼해야 큰 인물이 된다는 훈육이 오늘의 송명달을 만들었음을 강조하며, “이제 자네는 아버님의 그림자를 넘어 당당히 우리 영주의 자랑이자 이 시대의 큰 어른이 되었다며 제자의 귀향을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경제계를 대표해 무대에 오른 김현겸 펜스타그룹 총재는 민간 기업인의 시각에서 본 송 전 차관의 유능함을 증언했다. 김 총재는 “30년 전 사무관 시절부터 지켜본 송 차관은 항상 민간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도와준 키다리 아저씨같은 존재였다바다를 다루는 최고 관료가 되어 다시 산으로 둘러싸인 고향 영주로 돌아온 것은, 영주가 가진 잠재력을 새로운 가능성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전략적 결단이라고 평가했다.

 

지역의 원로인 영주 전임 시장단도 한마음으로 축하의 메시지를 전했다. 김진영 전 시장은 유능한 인재가 고향으로 돌아와 준 것에 감사를 표했고, 장욱현 전 시장은 한국 정치를 깨끗한 선비 정신으로 채워주고, 30년 행정 경험으로 인구 소멸 위기의 영주를 구출해달라는 세 가지 당부를 전했다. 현직 시장으로서 송 전 차관의 도움을 직접 받았던 박남서 전 시장은 송 차관이 중앙 부처를 누비며 도와준 덕분에 영주시 예산이 크게 늘어날 수 있었다며 실질적인 성과를 강조해 시민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1세션: 성장과 가족, 그리고 영주의 뿌리를 찾아서

2부 북토크는 송 전 차관의 인간적 면모와 공직 철학을 깊이 있게 파헤치는 시간으로 꾸며졌다. 첫 번째 세션은 송 전 차관의 친형인 송우달 비즈니스포스트 사장이 진행을 맡아 형제간의 애틋하면서도 날카로운 대담이 이어졌다. 진행자 송우달 사장은 한겨레신문 창간 멤버이자 경영총괄 전무를 지낸 언론계의 베테랑답게 동생의 내면을 끌어내는 탁월한 질문을 던졌다.

 

 

 

송우달 진행자는 우선 책 제목에 대해 물었다. 이에 송 전 차관은 제목 결정에 일주일간 고민했으나, 부친께서 밤새 생각해주신 영주사랑 25라는 제목을 따랐다고 밝혔다. 24시간으로는 고향을 향한 사랑이 부족하기에 25시간을 쏟아야 한다는 부친의 의지가 담겼다는 설명이다.
 


대담은 송 전 차관의 가치관을 형성한 부친의 등으로 옮겨갔다. 송 전 차관은 “6.25 전쟁 직후 자동차 정비공장에서 일하며 밤에는 야간 고등학교를 다니셨던 아버지는 퇴근 후에도 항상 책상을 펴고 공부하셨다아버지의 넓은 등을 보며 끊임없는 노력과 끈기를 배웠다고 말했다. 또한 잔잔한 파도는 노련한 뱃사공을 만들지 못한다.’는 부친의 말씀을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아 험난한 공직 생활을 버텨냈다고 고백했다.

 

어린 시절 영주 시내 관사골에서의 생활도 흥미롭게 다뤄졌다. 사형제 중 셋째인 그는 골목 안 이웃들 사이의 갈등이나 형제간의 이견을 조율하며 성장했다. 송 전 차관은 그때 배운 연결고리 역할이 훗날 공직에서 수많은 이해관계를 협상하고 조정하는 데 가장 큰 자산이 되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행정고시 합격까지 10년이라는 인고의 시간을 보내며 좌절할 때마다 자신을 품어준 것은 고향 영주의 부모님과 친구들이었다며, 자신을 영주가 키워준 사람이라고 정의 내렸다.

 

2세션: 공직 30, ‘설득과 조율로 일군 기적들

두 번째 세션은 송 전 차관의 실무적 성과와 행정 철학을 다루었다. 진행은 송 전 차관과 함께 여수 세계 박람회 아쿠아리움 유치 사업을 성공시켰던 고정락 전 롯데월드 아쿠아리움 부문장이 맡았다. 해양생물학 박사이자 실무 전문가인 고 부문장은 송 전 차관을 민간의 입장을 이해하는 진정한 멘토로 소개하며 대화를 시작했다.

 

 

송 전 차관은 공직 생활 중 가장 큰 위기로 사무관 2년 차 시절의 강도 높은 감사를 꼽았다. 그는 “3개월간의 철저한 조사를 받으며 공직은 권한이 아니라 무한 책임을 지는 자리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답했다. 이러한 책임 의식은 이후 그가 대규모 국책 사업을 수행하는 데 있어 흔들리지 않는 중심추가 되었다.

 

특히 여수 엑스포 당시의 비화는 흥미진진했다. 수익성을 따지는 기업과 재정 지원에 인색한 정부, 그리고 큰 규모를 원하는 시민단체 사이에서 3개월간 현장을 누비며 모두를 설득해낸 일화는 그의 별칭인 설득과 조율의 달인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보여주었다. 송 전 차관은 행정의 요체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라며, 아무리 훌륭한 정책이라도 이해관계자를 설득하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는 지론을 펼쳤다.

 

시민과의 대화: 민생을 꿰뚫는 행정가의 감각

행사 마무리 단계에서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는 송 전 차관이 고향 영주에 대해 얼마나 깊이 고민해왔는지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다. 한 시민이 영주의 택시와 버스 요금을 묻는 돌발 질문을 던졌으나, 송 전 차관은 택시 기본요금은 현재 4,000원이지만 내일부터 4,500원으로 인상되며, 버스 요금은 성인 현금 기준 1,500이라고 막힘없이 답변해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 중앙 관료 출신임에도 지역의 세밀한 민생 지표까지 챙기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는 영주의 교육과 문화 관광 산업에 대해서도 명확한 비전을 제시했다. “영주 교육의 혜택을 받은 사람으로서, 한 우물을 파는 전문가를 양성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한편, 7건의 국보를 포함한 영주의 문화 자산과 소백산의 자연을 결합한 새로운 관광 패러다임을 제안했다.

 

 

떠났던 사람에서 남아서 지켜보는 사람으로

이번 북콘서트를 통해 본 송명달 전 차관은 단순한 전직 고위 관료가 아니었다. 그는 30년 공직 생활 동안 쌓아온 정교한 행정력과 넓은 네트워크를 고향의 발전을 위해 온전히 쏟아 붓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영주의 역대 시장들이 한목소리로 그를 응원하고, 중앙 정치권의 여야 인사들이 축전을 보내온 것은 그가 가진 화합의 리더십이 지방 소멸의 위기를 맞은 영주에 절실히 필요함을 방증한다.

이제는 떠났던 사람이 아니라 남아서 지켜보는 사람이 되겠다. 제 삶의 마지막 페이지도 영주의 흙이 되고 싶다는 그의 마지막 인사는 영주 시민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다. 화려한 수식어를 내려놓고 영주의 아들로 돌아온 그의 도전이, 정체된 영주 지역 사회에 어떤 혁신적인 변화의 바람을 일으킬지 귀추가 주목된다. 30년 공직의 무게를 고향 사랑으로 승화시킨 그의 진심이 영주의 미래를 밝히는 25시의 등불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소영 기자 (iybc365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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