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화제다. 조선 제6대 왕 단종의 비극적인 생애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영화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자연스럽게 단종에 얽힌 역사와 그 무대인 강원도 영월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영월은 이미 '단종문화제'와 청령포, 장릉 등을 앞세워 단종 스토리를 지역의 강력한 문화 브랜드로 키워왔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영월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단종 복위의 가장 뜨거운 불꽃은, 바로 경상북도 영주의 순흥 땅에서 타올랐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른다. 단종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던진 충신 중 가장 강렬한 행동을 보인 인물, 바로 금성대군의 마지막 무대가 영주였다는 사실을!
진정한 충신의 모델, 금성대군
금성대군(1426~1457)은 세종대왕의 여섯째 아들로 세종이 가장 신뢰했던 아들 중 한 명이었다. 세종은 어린 단종을 금성대군의 집에 맡길 정도로 그를 깊이 의지했다.
하지만 1453년 형인 수양대군(세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권력을 찬탈하자 금성대군의 운명은 뒤바뀌었다. 그는 형의 전횡에 반대하며 끝까지 조카인 단종을 지키려 노력했고, 결국 1456년 사육신의 복위 운동이 발각되면서 경기도 광주, 전남 삭녕 등지를 떠돌던 그는 결국 1456년영주 순흥으로 위리안치되는 고초를 겪게 된다.
사육신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금성대군은 사육신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어쩌면 더 강렬한 충절을 보인 인물이다. 신하가 왕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도 숭고하지만, 피를 나눈 형제의 아들, 어린 조카 단종을 위해 왕자의 신분으로 목숨을 내걸었다는 것은 또 다른 울림을 준다.
그는 단순히 '죽음을 당한 인물'이 아니었다. 귀양지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행동하며 복위를 도모한 '실천하는 충신'이었다. 세 번의 유배에도 굴하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옳다고 믿는 길을 걸었던 금성대군, 그는 조선 충절 역사의 가장 뜨거운 이름 중 하나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펼쳐진 무대는, 바로 영주다.
죽계천을 물들인 붉은 충절, 정축지변
1457년(세조 3년), 금성대군은 순흥부사 이보흠과 손을 잡았다. 이보흠은 단종에 대한 충심이 깊은 관리였다. 두 사람은 단종을 복위시키기 위해 순흥 일대의 군민을 규합하고, 인근 지역으로 격문을 돌려 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역사서에는 '금성대군이 직접 피로 단종복위를 촉구하는 격문을 썼다'는 기록도 전한다.
그러나 거사는 발각되고 말았다. 세조 정권은 즉각 진압군을 파견했다. 이보흠은 처형되었고, 금성대군은 그 해 10월 사사되었다. 향년 31세였다. 그리고 순흥도호부는 역모의 땅이라 하여 아예 지도에서 지워졌다. 부 자체가 혁파된 것이다. 순흥이라는 지명이 역사에서 사라진 것은 물론,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당시 학살된 사람들의 피가 순흥을 흐르는 죽계천을 온통 붉게 물들였고, 그 핏물이 십 리를 흘러가 멈춘 곳은 오늘날 '피끝마을'이라는 지명으로 아직도 남아 그날의 애통했던 비극을 전하고 있다.
금성대군과 이보흠의 충절은 후대에 재조명되었다. 숙종 때인 1681년, 순흥도호부가 다시 복설되었고, 이를 기념하며 금성대군의 위패를 모신 금성단이 순흥면에 건립되었다. 매년 이곳에서는 제향이 올려지며, 그들의 충심이 기려진다.
영월은 했다, 영주도 할 수 있다
강원도 영월은 단종 스토리를 지역 정체성의 핵심으로 삼아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단종문화제, 청령포 유네스코 등재 추진, 영화·드라마 촬영지 유치, 각종 굿즈 개발까지—영월은 역사를 관광과 경제로 연결하는 법을 잘 알고 있다. '왕과 사는 남자' 같은 영화가 히트할 때마다 영월이 덩달아 주목받는 구조가 자연스럽게 갖춰진 것이다.
영주는 어떤가. 소수서원과 부석사라는 세계유산이 있고, 선비촌이라는 체험 공간도 있다. 하지만 금성대군과 순흥의 이야기는 아직 제대로 된 콘텐츠를 갖지 못했다. 지금이 바로 그 기회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이다
금성대군의 이야기는 단순한 패배의 역사가 아니다. 권력 앞에서도 옳은 길을 선택했던 사람의 이야기다. 31년의 짧은 생을 살았지만,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았다. 그 신념이 묻힌 땅이 영주의 순흥이다.
역사를 이야기로 만들고, 이야기를 콘텐츠로 키우고, 콘텐츠로 사람을 불러 모으는 것, 지금 당장 영주가 해야할 일이다. 자원은 이미 충분하다. 부족한 것은 의지와 기획력뿐이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열풍이 단종을 다시 불러냈듯, 언젠가 영주에서 시작된 콘텐츠 하나가 금성대군을 전국에 알리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그 날을 위해, 지금 영주가 먼저 움직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