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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7-20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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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되지 않은 삶은 망각되지만, 회고하는 삶은 역사가 된다'...회고(回顧) 네트워크’ 출범식 현장

전 국민 회고록 쓰기 운동의 시작을 알리다

기사입력 2026-03-25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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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부터 55년 경력의 노년 저널리스트까지, 세대도 직업도 다른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을 잇는 단 하나의 공통 언어는 기록이었다. “기록되지 않은 삶은 망각되지만, 회고하는 삶은 역사가 된다는 선언과 함께, 권운영 교수(신한대학교 리나시타교양대학)의 사회로 2026324일 서울 프레스센터 19층 매화홀에서 회고(回顧) 네트워크출범식이 열렸다.

 


회고 네트워크는 어느 단일 기관의 기획이 아니다. 지난 228, 철학·예술·지역사회·교육·기술 등 각 분야에서 가치를 실천해 온 15인이 온라인에서 처음 만났다. 인간과 AI, 자서전 영상 기록, 농촌 공동체의 서사, 청소년 자존감 회복에 이르기까지, ‘기록이라는 하나의 주제 아래 놀라울 만큼 다채로운 이야기가 쏟아졌다.

 

다섯 번의 만남을 통해 50인의 발기인이 결집했고, 임시 운영위원회가 구성되었고 서울대학교 인류학·민속학·기록학 분야의 강정원 교수(서울대학교 기록학)가 임시 운영위원장을 맡았다. 다섯 번의 논의를 관통한 핵심 합의는 단 하나였다.

"회고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나를 이해하는 행위이며, 그 기록이 모이면 우리 시대의 가장 정직한 희망이 된다."

 

첫 번째 순서로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성해영 교수(서울대학교 종교학)는 자신이 협회·문화부 지원으로 도서관 자서전 쓰기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겪은 생생한 현장을 풀어놓았다.

퇴직 교사·어르신 등 참여자들이 자서전을 쓰는 과정에서 나온 고백들은 묵직했다. “자서전을 쓰면서 시어머니를 용서했다”, “남편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는 말이 이어졌다. 교수는 이를 집단 치유 효과라고 명명했다.


 



개인이 자기 삶을 회복하되, 여럿이 모여서 함께하는 그 중요성을 그때 정말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처럼 불행한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회고는 내 삶을 회복하고 이웃의 고통도 함께 껴안을 수 있는 통로입니다.”

그는 인문이 공동체의 행복을 만드는 가장 핵심적인 통로가 바로 회고가 아닌가라는 말로 발표를 마무리했다.

임시 운영위원장 강정욱 교수는 영상으로 인사를 전하며 민속 인류학과 기록학을 연구하면서 도시와 농촌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기록해 온 학자다.




이러한 기록이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를 치유할 수 있다고 믿었고, 현재도 믿고 있습니다. 회고 작업은 단순히 기억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의미와 가치를 연결시키고 이를 미래로 변환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운영위원 이리현은 20년 넘게 출판 에디터로 일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회고 네트워크가 탄생한 맥락을 회고 네트워크는 알고리즘이 우리의 삶을 정의하지 않도록, 먼저 스스로 써야 한다는 생각으로 각자의 삶을 직접 기록하고 함께 나누기 위해 만들어진 네트워크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두 어린이의 발표였다. 김환희 어린이(구로초 4)는 같은 학교 친구와 교환하는 편지 일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편지를 읽다 보면, 우리가 나눴던 이야기들이 생생하게 기억나요. 그때 기분이 어땠는지도 다 떠오르고요. 아빠가 회고란 내 마음을 다시 들여다보는 거라고 설명해줬어요.”

6학년 강태호 어린이는 5년간 써온 일기를 잃어버렸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 충격이 오히려 기록의 소중함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처음엔 숙제였지만, 지금은 기억하고 싶은 것을 직접 기록한다는 생각으로 쓴다라는 통찰이 좌중을 감동시켰다.

 

 

사례 발표 ① — 도서관에서 탄생한 자서전들

강북청소년문화정보도서관 전성동 주임은 2025년 진행한 자서전 발간 프로그램 아무튼, 아모르 파티의 성과를 공유했다. 8명의 참여자가 각자 완성한 자서전으로 출간 기념 행사에서 참여자들이 자신의 글을 직접 낭독하자 가족들과 눈물 바다가 됐다고 당시의 분위기를 전했다. 전 주임은 는 자서전을 만드는 과정은, 하나의 고유한 우주가 세상에서 사라지기 전에 그 사람의 마음과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는 소중한 작업입니다.”라는 말로 발표를 마무리했다.

 

사례 발표 ② — 청소년의 꿈을 기록으로 이어가다

청소년꿈칠 재단 장희선 본부장은 2021년 하나금융그룹 출연으로 설립된 재단이 운영 중인 꿈칠사업을 소개했다. 음악·디자인·예술·체육·뷰티·패션 등 25개 분야에서 문화예술 재능은 있지만 꿈을 키우기 어려운 환경의 청소년 50명에게 전문가 멘토링을 연결하는 사업이다.

그는청소년들이 해야 할 과업과 앞만 보고 가야 한다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천천히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해주고 싶습니다. 청소년이 기록한 꿈의 기록이, 또 다른 청소년의 꿈을 키우는 씨앗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사례 발표 ③ — 37년간 교사들의 회고를 책으로 남긴 재단

두산연강재단 김창근 팀장은 재단이 1978년 설립 이래 축적해 온 회고 사업의 역사를 소개했다. 그는선생님의 회고가 다음 세대에게 닿는다는 철학이 37년을 이어온 원동력이었다는 말로 발표를 마무리했다.

 

사례 발표 ④ — 숫자 뒤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

천만문화재단 사무국 고명균 팀장은 1987년 삼천리그룹 출연으로 설립된 재단의 40년 역사에 대해 소개하며 40년간 3,500명의 장학생, 200억 원의 장학금이라는 숫자 뒤에, 재단을 선택한 한 사람 한 사람의 결심과 성장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시간은 자동으로 쌓이지만, 세월 속에 담겨 있는 의미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회고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그 숫자 뒤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 그 새겨진 의미를 다시 꺼내는 일입니다.”
 


사례 발표 ⑤ — 대학생들에게 보내는 편지, DMFS 프로젝트

서강대학교 희망연구소 나진경 교수는 글쓰기가 갖는 심리적 효과를 짚은 뒤, 연구소가 2022년부터 운영 중인 ‘DMFS(Dear My Freshman Self)’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인생에 대해 글을 쓰게 되면, 개별적인 사건들이 하나의 서사 구조가 있는 이야기로 합쳐집니다. 이야기에는 주제가 생기고, 그 주제가 곧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파악하는 구조가 됩니다.”

DMFS는 졸업생이 신입생 시절의 자기 자신에게 편지를 쓰는 프로젝트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시작된 사례를 참고해 서강대에서 자체 개발했다. 현재 고려대·서울대 등 여러 대학이 참여하고 있으며, 졸업생이 미래의 자신에게 편지를 보내는 ‘DM Future Self’ 프로그램도 병행 운영된다. 나 교수는 이 프로젝트가 회고 네트워크와 협력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사례 발표 ⑥ — 할머니들과 시를 쓰다

신지영 작가는 2020년 서울의 여러 요양 시설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자신의 이야기를 시로 쓰는 작업을 진행한 경험을 나눴다. 처음에는 내가 아는 게 없어서 무슨 시를 쓰냐며 두려워하던 어르신들이, 이야기가 시작되고 마음의 문이 열리면서 쏟아내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때 고생을 했지만, 그것이 나에게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줬구나. 내 인생을 믿게 만들어 줬구나. 그 경험을 스스로 확인하고 함께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신지영 작가는 이외에도 40대 중장년 남성들과 자신의 이야기를 가사로 옮겨 직접 작곡해 음악으로 만드는 작업, 청년들과 함께한 에세이 쓰기 프로그램 등 다양한 형태의 회고 작업을 소개했다. 그는 모두에게 자기 인생을 돌아볼 기회가 주어지고, 그것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우리는 서로 연대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지속적인 힘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례 발표 ⑦ — 사라지기 전에 기록하다: 노년 회고 다큐멘터리

다큐멘터리 신이명 감독은 2018년 완주의 한 폐촌 예정 마을에 혼자 들어가 90대 할머니 남양순의 마지막 여름을 기록한 작품을 소개했다.

감독은 영상 다큐멘터리의 특성상 과거의 이야기가 현재의 이미지와 겹쳐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화자의 정체성을 어떤 풍경과 함께 드러낼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이 기록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사례 발표 ⑧ — 34년 직장인의 경험, 워크그라피로 남기다

퍼플넷 김상아 대표는 1992년 작은 신문사를 시작으로 34년간 광고·기사·스토리텔링 분야에서 일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워크그라피(Workgraphy)’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안했다. 한 사람의 삶에서 일 경험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70~80%에 달하지만, 그 대부분은 기록되지 않고 사람이 떠나면 함께 사라진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개념이다.

그는한 사람이 사라지면, 기록되지 않은 두 사람의 일 경험도 동시에 사라집니다. 지금은 대퇴사의 시대입니다. 퇴직하는 전문가들의 평생 노하우가 기록 없이 사라지는 현실이 정말 안타깝습니다.”라며 회고 네트워크와의 공공 캠페인 연계를 기대한다고 뜻도 밝혔다.
 


사례 발표 ⑨ — 오래된 동네 의원들, 도시의 기억을 기록하다

도시 기록·기획자 박성진 대표(사이트&페이지)대표는 도시야말로 우리의 공동체적 삶이 녹아 있는 장소라는 관점에서 지난해 진행한 동네 의원 기록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그는 서울 역사 아카이브에서 자신이 태어난 1977년 독립문 인근 동네의 사진을 발견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며 동네 의원이 품고 있는 공동체적 기억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6명이 2년에 걸쳐 전국 오래된 동네 의원들을 직접 방문해 건축적·도시적 가치를 기록하고, 30~40년간 운영해 온 원장들을 대상으로 구술 인터뷰를 진행했다는 그는 동네 의원은 단순한 의료시설이 아닙니다. 지역 주민들의 공공 기억이 응축된 중요한 장소입니다. 백색 형광등, 차가운 청진기의 촉감, 알코올 냄새, 대기실에서의 기다림까지오래된 동네 의원만이 갖고 있는 기억과 감각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습니다.”고 발표를 마무리했다.

 

사례 발표 ⑩ — 팩토리 AI의 실험

레페토AI 이대범 대표는 회사 이름 자체가 라틴어로 회고하다·회상하다를 뜻한다고 소개했다. 자사 서비스는 인터뷰 내용을 AI가 다양한 문체로 서사화하는 방식이다.

그는 “AI 시대에 거짓 서사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개인의 삶이 거짓 서사에 묻혀버리지 않도록, 진정한 내러티브를 보존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세상이 멸망해도 이야기는 남습니다. 그 이야기를 먼저 쓰는 것이 우리의 일입니다.”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를 마치고 천○○(안동) 참석자는 어제 각 분야에서 오랫동안 경력을 쌓아오신 분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직접 들으며, 처음에는 회고라는 것이 거창하고 대단한 목표가 있어야만 하는 막연하고 커다란 숙제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이제 막 입사 9일 차를 맞이한 제게 회고란, 오늘 하루 버벅였던 실수들을 가만히 세어보고 내일은 이걸 반으로 줄여보자, 조금 더 잘해보자라고 다짐하며 내일의 저 자신에게 건네는 소소한 격려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비록 지금은 서툰 시작이지만, 이런 작고 소중한 기록들을 차곡차곡 쌓아보려 합니다. 그렇게 쌓인 시간들이 바탕이 되어, 저 또한 어제 뵈었던 분들처럼 능숙하게 저만의 이야기를 전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귀한 자리에 함께하며 얻은 에너지를 잊지 않고, 매일 조금씩 단단하게 성장하겠습니다라며 참석 소감을 밝혔다.

한 참여자는 "유언이야말로 가장 진솔한 회고입니다."라며 회고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이야기 했다. 어느 드라마 의 대사, "인간은 자기가 혼자 보는 일기에서조차 거짓말을 한다를 인용하며 "유언은 노년에만 쓰는 것이 아니라, 삶의 전 과정에서 꾸준히 기록돼야 한다고 말해 많은 공감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AI 시대 회고하는 인간을 위한 선언문낭독

행사의 절정은 강동훈 위원이 낭독한 선언문이었다. 선언문은 총 5개 항목으로 구성됐다.

 

01 기록은 ''를 찾는 일이다.

우리는 알고리즘에 의해 정의되기보다, 스스로의 목소리로 적어 내려간 자서전과 일기를 통해 자아의 고유성을 증명한다. 나의 기록은 평범해 보이는 하루하루가 이 시대를 증언하는 가장 정직한 자료이다. 기록은 '지금, 여기'의 삶을 인정하고, 긍정하는 행위이자 AI 시대에 인간다움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다.

 

02 회고는 개인의 치유를 넘어 사회적 연결망이 된다.

한 사람의 진솔한 회고록은 타인에게 위로와 영감을 주는 '회고 네트워크'의 기초가 된다. 고립된 개인이 기록을 통해 연결될 때, 우리 사회는 아무도 모르게 홀로 맞는 마지막과 서서히 지워지는 기억을 함께 붙들어줄 수 있으며, 세대 간의 지혜를 전수하는 건강한 공동체로 거듭난다.

 

03 성찰하는 기록은 사회적 회복탄력성의 근간이다.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기록하는 행위는 마음의 근력을 키우는 방법이다. 개인이 자신의 감정과 역사를 다스릴 수 있을 때, 사회 전체의 정신건강 지표는 개선되며 예기치 못한 재난과 변화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회복탄력성을 갖게 된다.

 

04 우리는 기술을 '성찰의 도구'로 활용한다.

AI는 지금껏 근대화의 오류 - 무한 경쟁, 소비, 욕망, 차별의 서사까지 대량으로 학습해 왔다. 우리는 기록을 통해 AI에게 삶의 진정성과 현재성을, 이웃의 온기와 공동체의 연대를 먼저 학습시킨다. 기술 인문주의의 실천이란 알고리즘의 보조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배워야 할 인간다움의 서사를 먼저 써 내려가는 일이다. 우리는 기술을 활용해 더 깊게 사유하고, 더 널리 기록하며, 더 따뜻하게 소통함으로써 '기술 인문주의'를 실천한다. 소버린 AI(Sovereign AI)를 통한 데이터 주권을 확립한다.

 

05 모든 사람의 기록은 다음 세대를 위한 유산이 된다.

오늘 한 사람이 남긴 평범한 일기는 내일의 누군가에게 시대를 증언하는 사료가 된다. 유명인의 연대기만이 역사가 아니라, 시장 상인의 하루, 학교를 돌보는 선생님의 삶, 난민 아이의 이야기가 모여 비로소 온전한 시대의 초상이 완성된다.

 

이날의 이야기들은 기록이 이미 우리 곁에서 조용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는 것이다. AI가 인간의 서사를 대체할 수 있다는 불안이 커지는 시대일수록,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언어로 삶을 써내려가는 행위는 작은 저항이자 인간성 회복에 대한 선언이 되는 것이다. 회고 네트워크가 출범식이라는 첫 문장을 넘어, 전 국민의 이야기가 실제로 축적되는 두 번째 문장을 쓸 수 있을지, 그 답은 이제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더 많은 사람들의 손에 달려 있다.





한 사람의 삶에 대한 기록이 그 존재를 증명한다는 많은 이들의 공감에서 시작된 '회고 프로젝트'가 범국민, 나아가 세계인의 기록하기 운동으로 이어져 건강한 사회의 기본 틀로 자리 잡기를 희망해본다. 

회고 프로젝트에 동참을 원한다면
memorynetwork.org를 통해 참가 신청을 할 수 있다.



 

김소영 기자 (iybc365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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