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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칼럼] 풍기에 정착한 교육자, 월남화가 계삼정②

송재진 즈음갤러리관장

기사입력 2026-05-27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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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 회갑전 리플렛


’716월에는 <광성중학교> 동창회, <숭인상업고등학교> 동창회, <금계중학교> 동창회가 공동 주최한 회갑기념전을 국립공보관에서 개최했다. 이 전시회를 주관한 문하생들로 최영림, 한남석, 홍종명, 김희찬, 장종선, 김창구 등이 이름을 올렸다. 이 중 감자라는 작품은 당시 국무총리 김종필이 사갔다는 말도 전해진다. 리플렛 표지화 농가의 여인(oilon canvas 72.7x90.9cm 연도미상)은 한국은행에서 매입했으며, 2018년에 발행한 한국은행 소장품 100100서양화부 첫페이지에 수록되어 있다.

 

농가의 여인   oil on canvas   72.7x90.9cm    연도 미상.  한국은행 소장
 


1971 회갑전에서


 







 

‘784, 수확, (), 정물등 유화 50여 점으로 네 번째 개인전을 신세계미술관에서 개최했다.

미술평론가 이경성은 서문에서 “1938년 이후 학교 교사로서 교육계에 발을 내딛고 나서부터는 화가 수업이 약간 등한시 된 것 같다.”고 운을 뗀 뒤 이번 신세계에서 개최될 작품전에는 근작 50여 점이 전시되는데 대부분 풍경화와 정물화이며, 풍경화는 인상주의의 흐름을 받은 구상화로서 분단된 터치와 조화된 색채가 객관주의적인 시각이 빚은 또 하나의 자연이라고 썼다.

 

박영선이 계삼정을 밀레에 견준 데 대해서도 대상과 대결하여 또 하나의 창조를 이루기보다 자연 속에 몰입하여 자연의 일부가 된다는 자세가 더 강하기때문으로 파악했다.

 

그러나 정물화에 대해서는 약간 생소한 세잔 풍의 작풍이 엿보인다. 현상적인 분위기가 아니라 정물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조형에 도전한 세잔의 딱딱한 구성적인 작품을 연상시킨다.”고 다른 시각을 드러냈다. 그러나 계삼정은 밀레나 세잔에 그치지 않고 20세기 화풍인 입체파나 구성주의 등 다양한 사조에 대해서도 탐색하거나 모사를 통한 다수의 작품들을 남기고 있다.

 

’825월에는 한·미 우호 관계 수립 100주년을 맞아 LA 3·1미술관 초대전을 가졌다. 영문 초대글에는 한국에서 개최했던 초기 여섯 번의 전시회 중 최고의 컬렉션이며, ‘대담한 필치로 고상하고 광택이 나는 색의 독특한 억양이 있는 작가로 관심을 고취한 뒤, “그가 대부분의 시간을 시골에서 보냈기 때문에 그의 그림 스타일은 유명한 시골 화가인 장 프랑수아 밀레를 떠올리게 한다.”고 소개했다.

 

역시 화풍을 밀레에 견주고 있다. 계삼정은 교민들을 의식한 듯 실향의 추억에 상응할 수 있는 주제와 소재들을 중심으로 풍경(scenery), 수확(harvest), 소달구지(carriage), 쟁기질(ploughing), 작별(farewell), 회상(recollection), 집 앞길(front path), 보리밭(Barley Field)30점을 가렸다. 그러나 이 전시는 많은 작품이 사기를 당해 되돌려 받지 못한 일이 벌어지며 불미스런 결말을 맺고 말았다.

자연주의와 인상주의 화풍으로 변모된 것은 풍기라는 공간에서 시골 풍경을 만나면서였다.

 

이 외에도 명화집에서 영감을 얻은 도상들을 곧바로 자신의 그림에 응용한 작품들도 다수 남겼다. 풍경과 정물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소재를 택했으며, 발상과 실험을 호기롭게 다뤘다. 지역의 문화유산인 소소서원의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大成至聖文宣王殿座圖)나 사천왕상, 가흥동마애삼존불 등을 유화로 모사하거나 사실적으로 그리기도 했다.

 

특히 과감한 생략과 파격적인 구성이 돋보이는 석굴암이나 붉은 부처와 같은 작품들은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을 만하다. 또한 19c 이후 서양미술의 여러 사조들을 탐구하며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곧바로 도상을 차용해 작품을 시도했던 행동파였다.

 

표현주의적 화풍, 자유분방한 발상, 달필의 경지...이러한 수사들이야말로 계삼정을 드러내는 언어일 것이다. 교육과 예술 사이에서 줄타기하던, 결핍감과 긴장감이야말로 계삼정이 짊어졌던 심리상태가 아니었을까.

 

석굴암에서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계삼정의 독창이고도 놀라운 감각은 붉은 부처, 석굴암에서, 바둑과 같은 그림에서 그 정점을 찍는다. 특히 석굴암에서는 묘사된 본존불에 황금빛 노란색을 덮어버리고, 배경은 보라색으로 칠하는 파격이 눈길을 끈다.

 

두광을 나타낸 몇 줄의 흰색 방사선이 부처의 존재를 더한층 부각시킨다. 돔의 공간은 곡선과 사선을 이용해 입체파 식으로 면 분할하여 본존불로 향하는 1점 투시의 착시감을 흩어 놓는다.


.이 작품은 계삼정이 서양사조로부터 발췌한 감흥을 집대성시킨 한 편의 드라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물해석의 독창성은 화가의 그림 중에서 최고의 걸작으로 꼽는데 주저할 수 없게 만든다, 비록 작은 그림이지만 화면 구성력과 색채감각. 하모니즘 식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본존불의 추상성과는 달리 화면 양편의 금강역사상은 실재감 있게 표현하여 구체적 현장감은 물론

 


금계다리

 


.년 전시 서문에 쓴 말이다‘78이 말은 이경성이 ’. 손으로 그리는 화가가 아니라 마음으로 그리는 화가. ‘고 말년의 계삼정을 회상했다.”고 하시며 추상화를 그리셨다잘 보이지 않아 색만 바른다선생은 만년에 이르러서도 붓을 놓지 않으셨는데 김예순은

 

계간미술42 (87 여름)

 

계삼정은 소재 불문 다양한 장르를 두루 섭렵했던 작가이며, 유작 또한 100여 점 넘게 유족들이 소장하고 있다. 인물화, 풍경화, 정물화는 물론, 동물화, 종교화, 추상화에 이르기까지 장르 불문 호기심과 왕성한 창작열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계간미술에 실려 있는 세 점의 작품은 풍기 정착 이전이거나 정착 초기의 아카데믹한 작풍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자료들이다.

 

거칠고 투박한 터치의 풍기 개척시대 작품들과 대비를 이룬다. 계삼정은 맘에 든 구도의 그림은 몇 번이고 반복해 그렸다. 비로봉이 보이는 욱금동 풍경이 대표적인데 동일 모티브로 설경까지 반복해 그렸다.

 

개척시대의 계삼정은 40대 이후로서 학교 경영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경주할 수밖에 없던 처지였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의 그림의 의미는 삶의 휴식처이자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자신만의 독립지대가 아니었을까. 표현주의적 화풍, 자유분방한 발상, 달필의 경지는 그러므로 결코 우연히 발생된 것이 아님을 공감하게 된다.

 

영주인터넷방송 박태완 기자 (iybc365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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