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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9-20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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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5월, 영주읍 가흥1리 길가에 남겨졌던 갓난아이를 기억하십니까

51년 만에 뿌리 찾아 영주 오는 해외입양인 이영혜(폴라 머사) 씨

기사입력 2026-09-17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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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5월의 초여름, 영주읍 가흥1(현 영주시 가흥동 일대)의 한 길가. 세상에 태어난 지 열흘 남짓밖에 되지 않았던 핏덩이 여자아이가 마을 어르신의 눈에 띄었다. 아이 곁에는 이름도, 부모의 사연도 남아있지 않았다.
 

당시 영주읍장의 의뢰로 대구 백백합보육원으로 인계된 아이는 그곳에서 비로소 이영혜(李英惠)’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로부터 51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다. 태평양을 건너 미국 땅에서 미 공군으로 복무하고, 이제는 네 아이의 어머니가 된 그 아이가 잃어버린 자신의 시간을 마주하기 위해 마침내 고향 영주로 돌아온다. 미국명 폴라 머사(Paula Murtha·한국명 이영혜·51) 씨가 오는 1014일 영주 땅을 밟는다.

 

1975년 5월 6일, 영주읍 가흥1리에서 발견된 당시 모습


대구 백백합보육원에 남아 있는 영혜 씨의 입원 기록 카드는 누렇게 바랬지만, 당시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 이름: 이영혜 (李英惠, 보육원 작명)

- 생년월일: 1975425일생 (추정)

- 발견 일시 및 장소: 197556, 영주읍 가흥1리 길가

- 입원 경로: 영주읍장 의뢰로 1975524일 오전 1145분 대구 백백합보육원 입원

 

보육원에 머문 지 약 한 달 만인 197563, 영혜씨는 대구 캠프 워커(Camp Walker) 728 헌병대대 소속 주한미군이었던 양부모(Jesse King, Sandra L. King 부부)에게 입양됐다. '폴라'라는 새 이름을 얻은 영혜씨는 두 살이 되던 해 양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다.

 

자라는 동안 영혜씨에게 한국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었다. 자신의 핏줄도, 문화도 알지 못한 채 성인이 된 그는 양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 미 공군에 입대했다.

 

1975년 5월 6일, 영주읍 가흥1리에서 발견되어 입양된 이영혜씨 현재 모습


그런 그에게 운명 같은 시간이 찾아왔다. 미 공군 복무 중이던 2000년부터 2001년까지, 평택 오산공군기지로 파견 근무를 나오게 된 것이다. 태어나 처음으로 모국의 공기를 마시고 문화를 접한 그는 당시 만난 친구 부부의 따뜻한 배려 속에 "나 역시 이곳에서 환영받는 존재"라는 깊은 위로를 얻었다.

 

2014년 미 공군을 은퇴한 영혜 씨는 현재 미국 워싱턴주 타코마 인근에서 남편 마이클 씨와 함께 13, 네 자녀를 키우며 디저트와 수제 쿠키를 만드는 사업을 하고 있다.

 

그는 언젠가 아이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며 아이들에게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를 꼭 보여주고 싶다. 한국은 지금도, 앞으로도 우리 가족의 가장 중요한 뿌리이기 때문이다."라고 전했다.

 

영혜씨는 해외입양인 모국 방문 지원 단체인 '미앤코리아(Me &Korea)'의 도움을 받아 오는 1014, 자신의 삶이 시작되었던 곳이자 유일한 기록으로 남아 있는 고향 영주를 찾기로 결심했다.

 

반세기가 지나는 동안 가흥동 일대는 빌딩과 아파트가 들어서며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지만 사람들은 당시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19754월 말에서 5월 초 사이, 영주읍 가흥1리 일대에서 아이가 태어났던 사연, 혹은 길가에 갓난아이가 남겨져 있었다는 이야기나 읍사무소로 보내졌던 기억을 가진 분들의 제보가 절실하다.

 

"단 한 사람이라도 당시의 사연을 기억하는 분을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는 것이 반세기 만에 고향을 찾는 영혜 씨의 간절한 바람이다. 당시 가흥1리 주민이었거나 이 사연과 관련된 작은 단서라도 알고 계신 분은 본지(더영주 : 054-631-9999)로 연락하면 된다.

더영주 김소영 기자 (iybc365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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