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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9-21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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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人영주] 화폭에 심은 수억 개의 황금빛 생명… '콩의 화가' 박종경

경북 봉화 출신 박종경 작가를 만나다

기사입력 2026-09-21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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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볕이 투명하게 내려앉은 멍석 위를 가득 채운 수만 톨의 황금 메주콩. 서양화가 박종경의 캔버스를 마주하는 순간, 관람객은 단순한 시각적 재현을 넘어 코끝을 스치는 흙내음과 유년의 따스한 온기를 직관적으로 감지하게 된다.

 

 



경북 영주와 이웃한 봉화의 너른 품에서 나고 자란 박종경 화백은 한국 구상미술과 극사실 회화의 지평에서 유일무이한 콩의 화가로 통한다. 당대 화단이 사과나 포도 등 탐스럽고 매끈한 과실류의 화려함에 주목할 때, 그는 가장 척박한 땅에서도 묵묵히 뿌리를 내리고 결실을 맺는 질박한 농경의 산물 메주콩을 화면의 주역으로 불러냈다.

 

 

 

2006년 대구 앞산의 능선에서 콩더미의 굴곡과 삼라만상의 생명성을 직관한 이래, 그는 국내외 유수의 아트페어와 25회 이상의 개인전, 그리고 중국 국영 CCTV 다큐멘터리 의 주역으로 조명받으며 세계 미술계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그의 그림 속 콩은 결코 정물로 머무르지 않는다. 가난과 결핍의 시절에도 온 가족의 밥상을 든든하게 지켜주던 각종 장류의 재료이자 즐겨먹던 간식으로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삶의 역사를 함께 해왔다.

 

 

 

하루 10시간씩 붓끝을 벼려내는 극한의 노동을 통해 화폭에 수억 개의 생명을 심어온 박종경 화백. 고향의 흙에서 발원한 예술적 영감을 바탕으로 세계인의 마음에 따뜻한 풍요를 건네는 그를 양평 작업실에서 만나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2006년 대구 앞산을 오르시던 중 산자락의 음영에서 콩더미를 직관하셨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당대 화단에서 흔히 다루던 화려한 과실류를 뒤로하고 소박한 ''을 평생의 소재로 택하신 결정적 이유가 궁금합니다.

A. 2006년 무렵 건강을 위해 담배를 끊고 매일같이 대구 앞산을 올랐습니다. 어느 해 질 무렵, 굽이치는 산 능선과 골짜기에 빛과 어둠이 빚어내는 깊은 굴곡을 내려다보는데 불현듯 수북이 쌓여 있는 콩더미의 형상이 시야를 강렬하게 스쳤습니다. 그 순간 산야에 깃든 수많은 꽃과 나무, 삼라만상의 생명이 낱낱의 콩알 하나하나로 환치되어 다가왔지요.

당시 극사실 회화 화단은 사과나 포도처럼 화려하고 매끈한 과실 정물이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유년 시절 고향 봉화의 앞마당에서 보았던, 가난 속에서도 밥상을 채워주던 누런 메주콩의 질박함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흙의 거친 숨결을 견디고 맺힌 메주콩이야말로 한국인의 원초적 생명력이자 어머니의 따스한 품을 대변하는 가장 정직한 생명의 알갱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Q. 캔버스 속 콩들은 손을 뻗으면 만져질 듯 사실감이 느껴집니다. 작업실에 실제 콩 자루를 구비해 두고 관찰하신다고 들었는데, 3차원의 실물을 2차원 평면에 옮길 때 가장 고심하시는 원칙이 있으시다면?

A. 관념 속 상상만으로는 살아 숨 쉬는 물질의 생명력을 온전히 구현할 수 없습니다. 제 작업실 바닥에는 늘 콩 자루가 놓여 있고, 구상 단계마다 수천수만 개의 실물 콩을 바닥에 직접 쏟아 붓습니다. 콩더미가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며 만드는 볼륨과 그 틈새로 파고드는 빛의 산란, 그림자의 명암을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확인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캔버스라는 평면 위에 그 빛과 어둠의 미세한 간극을 재구성할 때 제가 가장 집중하는 것은 '공기감과 양감'입니다. 단순히 외형의 윤곽을 매끄럽게 베끼는 데 그치지 않고, 콩알의 둥근 곡면을 타고 부드럽게 감싸 도는 음영 처리를 통해 빛의 실재감을 부여해야만 관객의 시선 끝에서 비로소 촉각적인 볼륨으로 되살아납니다.

 

Q. 50호 화폭에 약 1만 알, 150호 대작에는 하루 10시간씩 한 달 이상 매달려야 하는 이른바 '쪼으는 그림'을 수십 년간 지속해 오셨습니다. 이 고된 반복의 노동을 묵묵히 지탱해 온 힘은 무엇인가요?

A. 화단 동료들이 제 작업을 보고 혀를 내두르며 '쪼으는 그림'이라 부르곤 합니다. 세필로 콩알 하나하나의 명암과 주름, 빛의 반사점을 집요하게 벼려내다 보면 어깨와 손목이 마비될 듯한 육체적 한계에 부딪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게 이 작업은 고통스러운 기교의 과시가 아니라 일종의 '회화적 수행(修行)'입니다. 봄에 씨앗을 뿌려 가뭄과 폭우를 견디며 가을의 결실을 기다리는 농부의 땀방울과 다르지 않습니다. 화폭에 콩 한 톨을 심는 심정으로 붓을 놀리다 보면 어느 순간 캔버스와 온전히 합일되는 깊은 무아(無我)의 평온에 도달합니다. 농부의 묵묵한 노동이 풍년을 부르듯, 화가의 정직한 붓질만이 생명의 온기를 캔버스에 영구히 정착시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Q. 멍석, 맷돌, 채반 등 향토적 기물 곁에 색소폰, 트럼펫, 바이올린 같은 서양 악기나 현대적 사물이 함께 작품에 나타납니다. 전하고자 하시는 메시지는?

A. 제 그림은 향토적 농경 풍경을 단순히 과거의 박제된 기억으로 회고하는 정물화에 머물지 않습니다. 멍석이나 맷돌, 됫박이 흙의 역사와 어머니의 노고를 담은 무대라면, 그 곁에 놓인 서양 악기들은 수확의 기쁨 속에서 울려 퍼지는 축제의 음악을 상징합니다.

전통과 현대, 동양의 토속성과 서양의 선율이 한 공간에서 어우러지는 광경은 일종의 '초현실적 상상의 풍경'입니다. 관람객들이 시골의 구수한 정취 속에서 악기가 뿜어내는 경쾌한 리듬을 느끼며, 팍팍한 일상 너머 삶의 축제와 해학을 시각과 청각의 공감각으로 만끽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 구성입니다.

 


 

Q. 대표 연작인 'Dream-Richness(-풍요)'가 현대인들에게 각별한 위로로 다가가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A. 현대 사회는 물질적으로 유례없이 풍족해졌지만, 내면의 고립감과 정신적 결핍은 그 어느 때보다 깊어졌습니다. 황금빛으로 가득 찬 콩더미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부귀와 다산, 건강한 삶을 향한 기원을 직관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수만 개의 콩알이 저마다의 빛을 내면서도 거대한 콩더미라는 하나의 하모니를 이루듯, 우리 인간 역시 각자의 고유성을 지닌 채 공동체 안에서 따뜻하게 연대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미술평론가 고충환 선생께서 제 그림을 두고 '현대인이 잃어버린 원형적 고향을 더 잘 꿈꾸기 위한 제안'이라고 짚어주셨듯, 삭막한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제 그림 앞에서 잠시나마 어머니의 품 같은 무조건적인 위안과 풍요로운 안식을 찾기를 소망합니다.


 


Q. 노란 메주콩에서 출발하여 최근에는 붉은 팥을 전면에 내세운 작업으로 도상을 확장하셨습니다.  

A. 노란 메주콩이 가을의 대지가 베푸는 모성적 풍요와 생명력을 뜻한다면, 붉은 팥은 우리 민속 신앙에서 오랜 세월 액운을 물리치고 상서로운 기운을 부르는 상징이었습니다.
 


요즘 신혼부부들이나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분들이 팥 그림을 소장하거나 선물하는 사례가 부쩍 늘었습니다. 불확실하고 험난한 세상 속에서 나쁜 기운을 막아내고 순수하고 맑은 복락(福樂)만이 깃들기를 바라는 옛 조상들의 간절한 염원을 현대적 회화 언어로 부활시키고자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Q. 2019년 중국 국영 CCTV 다큐멘터리 에 주역으로 출연하셨고, 중국과 해외 유수 아트페어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한국적 서정이 짙은 콩 그림이 세계인의 공감을 이끌어낸 비결은 무엇일까요?

A. 중국 광저우 쯔니탕 예술특구 창작스튜디오와 우시 레지던시에서 작업하며 국경을 넘는 예술의 힘을 실감했습니다. 2019CCTV 제작진이 직접 찾아와 다큐멘터리를 촬영할 때도 그들이 주목한 것은 국경을 초월한 '생명에 대한 경외'였습니다.

 


 

가장 한국적이고 지역적인 정서가 결국 가장 세계적인 보편성을 지닙니다. 씨앗을 심고, 그것을 거두어 서로 나누며 살아가는 농경의 기억과 생명에 대한 감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의 유전자에 깊이 각인된 근원적인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언어와 문화는 달라도 캔버스 위에 맺힌 땀방울과 결실의 미학 앞에서는 누구나 깊은 감동으로 화답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Q. 삼화간장, CJ진천두부공장, 해태크라운제과 등 콩과 밀접한 식문화 대표 기업들이 작가님의 작품을 다수 소장하고 있습니다. 순수 예술과 산업 현장의 만남을 어떻게 바라보십니까?

A. 화가로서 대단히 영광스럽고 보람찬 인연입니다. 간장과 두부, 제과는 모두 대지의 산물인 콩을 바탕으로 국민들의 건강과 식탁을 지탱하는 산업들입니다.

미술관이나 화랑이라는 정형화된 미적 공간을 넘어, 매일같이 콩을 다루고 제품을 생산하는 산업 현장의 로비와 사옥에 제 그림이 걸려 노동자들과 방문객들에게 매일의 땀방울을 격려하고 풍요의 기운을 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예술이 일상과 함께 하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Q. 콩더미 사이로 날아든 작고 통통한 참새, 그리고 싱그러운 초록 잎사귀도 자주 등장합니다. 어떤 역할인가요?

A. 수만 개의 마른 콩알만 놓여 있다면 화면은 자칫 정적이거나 건조함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 고요의 한가운데로 날아든 참새 한 마리와 갓 돋아난 푸른 잎사귀는 화면 전체에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풍년의 들판에서 인간과 곡식을 함께 나누어 먹던 참새는 자연과 인간이 대립하지 않고 조화롭게 공존하던 생태적 평화를 상징합니다. 마른 곡물 사이로 피어난 푸른 잎은 죽어있는 듯 보이는 씨앗 속에서도 언제든 새로운 생명이 움틀 수 있다는 희망과 순환의 메시지를 품고 있습니다.


 


Q. 고향 경북 봉화는 작가님께 어떤 의미이며, 청량산 자락에 언젠가 건립하고자 하시는 '콩 미술관'의 청사진은 무엇입니까?

A. 봉화는 제 살과 뼈를 이루고 미적 감수성을 만들어준 고향입니다. 서울과 대구, 해외를 오가며 수십 년간 화업에 매진해 왔지만, 제 붓끝이 향하는 종착지는 언제나 고향 봉화의 산천이었습니다.

평생 캔버스 위에 수확해 온 수억 개의 콩 그림들을 모아, 봉화의 명산인 청량산 자락에 아담하고 자연 친화적인 '콩 미술관'을 세우는 것이 저의 마지막 꿈입니다. 번잡한 도시를 벗어나 고향의 맑은 흙과 바람 속에서 자연과 인간, 농경이 예술로 호흡하는 문화적 쉼터를 일구고 싶습니다. 흙에서 비롯된 제 예술적 결실을 고향의 대지에 온전히 환원하는 그날까지, 설레는 마음으로 묵묵히 붓을 들겠습니다.

 

    


박종경 화백의 작업실 바닥에는 늘 콩 자루가 놓여 있다. 캔버스 위에 펼쳐진 압도적인 양감과 빛의 산란은 기교적 관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실물 콩을 쏟아 붓고 매만지며 빛과 그림자의 호흡을 집요하게 관찰해 온 우직함의 결실이다.

 

세필로 콩알 하나하나의 주름과 명암을 그려내는 이른바 쪼으는 그림은 흙을 갈고 씨를 뿌려 결실을 기다리는 농부의 숭고한 노동과 그 궤를 같이한다. 미술평론가 고충환이 지적했듯, 그의 치열한 회화적 수행은 현대인이 가슴속 깊이 스며있는 고향을 이끌어내기 위한 정직한 과정들의 집합체이다.

 

특히 향토적인 멍석과 맷돌 곁에 색소폰과 트럼펫을 배치해 수확의 기쁨을 노래하고, 액운을 막고 복을 부른다는 의미를 가진 붉은 팥으로 도상을 확장해 나가며 끊임없는 도전과 갱신의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질박한 농경 정서가 국경을 넘어 세계인의 가슴에 닿을 수 있었던 비결 역시, 생명을 향한 경외와 연대의식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붓끝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그의 오랜 시선은 다시금 유년의 기억이 살아 숨 쉬는 모태의 공간, 고향 봉화로 향하고 있다. 청량산 자락에 자연 친화적인 콩 미술관을 세우겠다는 그의 꿈은, 예술적 성취를 자신이 고향에 영구히 환원하고 싶다는 소망을 보여주는 듯하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찬란한 황금빛 생명을 길어 올리는 박종경 화백의 붓길은, 오늘도 메마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깊고 풍요로운 위로의 싹을 틔워내고 있다.

 

 

▶ 박종경 작가 프로필
개인전
32(갤러리 사비나.나무아트스페이스.소나무갤러,갤러리위,동원화랑 등)

2008-12,14,15 한국구상대제전/서울, 한가람미술관
2000-2026 (KIAF,화랑미술제,대구아트페어,부산아트쇼,SOAF,미국.홍콩,싱가폴등국내외 아트페어백수십여회 참가)
2010  부산비엔날레 한중일 극사실주의 작가전(부산문예회관)
2012 극사실주의 화가들전(울산,현대예술관)
2009 한국현대미술의 흐름-극사실 회화전(김해 문화예술의전당)
2011 인도네시아 린다갤러리 한국작가 3인 기획전(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디자인 센터)
2019 맨허탄 CJ.ONE갤러리초대 2인전

주요활동

대구미술 발전인상수상,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엮임
:한국미협,중국 광주시 쯔니탕 예술특구 창작스튜디오에서 소속작가로 작업
2019.중국국영CCTV 다큐멘터리``제작참여방영
KTV살어리랏다(콩그림에 
고향을 담다제작방영, MBC(하늘의 인연.세번째결혼)작품출연
 

▶ 작품소장처
대구은행, 하나은행,대구지방법원,대양상선,세운철강,삼화간장,해태크라운제과. CJ진천두부공장, 경북관광공사. 대구시 달서구 첨단문예회관, 법무법인 KR.씨젠,TODAY ART

더영주 김소영 기자 (iybc365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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